우리 자연의 멋과 소소한 일상의 풍경- 오용길

by 밤과 꿈


'봄의 기운', 종이에 수묵과 채색, 1997년


1970~80년대에 이르러 한국화라는 용어가 동양화를 대체하게 된다. 그것은 조선시대 후기의 겸재와 단원에 의해 진경산수가 정착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이 힘차게 지속되지 못한 데다가 일제 치하에서 왜색이 가미된 남종화가 우리 화단에 스며들어 전통 화단의 큰 줄기를 형성했던 현실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기도 했다.

다행히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 그리고 고암 이응로와 풍곡 성재휴를 거치면서 전통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움직임이 있어왔고, 오랫동안 왜색이 짙은 그림을 그려오다 한국의 단청색과 무속화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 한국적인 채색화를 복원한 박생광과 같은 화가에 의해 복고에 머물지 않은 한국화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후 한국화라는 용어는 동양화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지만 그 개념의 정의가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면서 한국화라는 이름으로 서양화의 기법과 방법론을 도입, 종이에 먹을 사용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서양화, 특히 추상 회화와의 구분이 무색한 경우도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수묵 정신의 회복을 위한 신수묵 운동 또한 한편에서 전개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오용길(1946~ )은 전통 회화의 정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서양화의 화법을 잘 절충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오용길은 사물에 대한 뛰어난 데생력을 바탕으로 우리의 자연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실경을 변함없이 그려왔다. 나아가서 서울역과 한국은행, 청계천 등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풍경을 솔직하게 그려왔다. 이 모든 화면은 모두 직접 사경한 현실을 담고 있으며, 전통적인 산수화의 삼원법을 배제하고 서양화의 원근법을 적용함으로써 그의 그림은 현대적 감각의 실경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유홍준이 오용길의 그림을 평한 것처럼 "한국화라는 명칭에 걸맞은 조형적 근거"를 오용길은 발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른바 한국화의 전통성을 복원하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풍경을 묘사함에 있어 솔직한 시선을 잃지 않는 오용길의 그림은 얼핏 보기에 서양의 수채화와 다름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운필과 원경의 묵법에 있어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의 계승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기존의 소담한 풍경 이외에 대형화된 화면에 전통적 기법으로 그림의 깊이와 변화무쌍한 구도를 도입한 그림도 그리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조형세계를 넓혀가는 화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도 오용길이 묘사하는 아름다운 우리 자연과 소소한 일상의 풍경 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얻게 된다. 실로 오용길의 그림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