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향해 가는 탄식

- 음악으로 듣는 四季, 가을

by 밤과 꿈

차이코프스키(Peter Ilych Tchaikovsky)의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etique)



예전 같으면 11월에 내리는 첫눈과 함께 가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친 발걸음을 내디뎌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계절을 서둘러 겨울을 알리는 첫눈을 11월에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일 년 내 내 눈다운 눈은커녕 싸락눈조차 보기가 쉽지 않은 남쪽의 중소도시에서 자랐던 나로서는 눈이 실종된 겨울은 어린 시절 상상 속으로 동경해마지 않았던 설국의 겨울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 운전으로 겨울마다 강설량에 신경을 바짝 쓸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욕먹을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어쩌다 싸락눈이라도 흩날리면 눈이 내린다고 잔뜩 들떠서 동네방네 돌아다녔던 어린 시절을, 겨울방학 책 속의 눈싸움이나 썰매 타는 삽화를 보면서 상상으로 겨울을 꿈꾸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가지게 되는 눈에 대한 동경이다.

눈이 사라진 겨울의 모습이 쓸쓸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계절을 앞서 느닷없이 내려 겨울을 예감케 하는 11월의 첫눈을 만나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아무런 대비 없이 겨울의 깊고도 긴 공허 속으로 사라져 간다는 느낌이 든다. 절멸의 침묵 속으로.


절멸을 향해 사라져 가는 차이코프스키의 영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또한 침묵을 향해 가는 탄식이다. 네 개의 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어두움과 비애가 종국에 이르러 격정적인 극복의 외침에 도달하지 못하고 절망이 지나쳐 절멸의 침묵 속으로 음악은 사라진다.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진 이 곡의 초연은 곡의 일관된 어두움과 익숙하지 않은 엔딩으로 해서 청중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 곡의 초연으로부터 9일 후에 차이코프스키는 콜레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장례 이후에 있었던 연주회에서 다시 연주되었던 비창 교향곡은 청중의 심금을 울려 객석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녹아 있는 센티멘털리즘은 차이코프스키의 개인적 성향과 시대 상황의 산물로 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당시 러시아가 처해 있었던 시대 상황이 겹쳐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센티멘털리즘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급작스런 죽음은 그의 동성애에 대한 소문과 결부되어 자살설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 왔고 지금은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짐작컨데 살아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그가 죽어서도 안식하지 못할 것 같아 측은지심이 든다. 그의 삶과 음악은 어두웠으나 부디 그의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안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악곡의 구성과 추천 음반

제1악장(Allegro- Allegro non troppo): 시작부터 우울한 선율이 주도하는 악상은 어둡고 쓸쓸한 전곡의 분위기를 예고한다.


제2악장(Allegro con grazia): 1악장과는 달리 빠른 템포의 진행이 오히려 긴장감을 조성한다.

제3악장(Allegro molto vivace): 익살이 섞인 스케르초 악장으로 잠시 분위기를 전환한다.


제4악장(Finale, Allegro lamentoso): 비통함이 절정에 이르러 포효하는 듯한 금관 악기와 현악기의 비장한 선율이 조용히 사라진다. 절멸을 향하여.


곡의 추천 음반으로는

1. 예프게니 므라빈스키(Cond.),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2.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Cond.), 러시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Melodiya)

3.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Cond.),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 (Melodiya)

가 센티멘털리즘을 배제한 연주이고,

4. 빌헬름 멩겔베르크(Cond.),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PHILIPS)

5. 빌헬름 푸르트벵글러(Cond.),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

는 센티멘털리즘이 극대화한 연주이다. 그 외

6.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Cond.),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MI, DG)

6. 페렌스 프리차이(Cond.),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DG)

를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