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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y 28. 2024

시인이여, 죽어서도 축복 있으라

 지난 22일 신경림 시인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70~80년대에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게 시인은 친숙함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시인은 1956년에 등단한 이후로 김수영과 신동엽, 그 후로 박봉우가 떠나간 자리를 고은 시인과 함께 지키면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었다. 물론 우리 현대사의 상황에 맞물린 우리 문단,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우리 시단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일찍이 1960년대부터 우리 문단은 참여와 순수 문학 사이의 논쟁이 있어왔다. 이와 같은 문단의 해묵은 진영 간 분리는 정치적 격변기인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1980년대 ‘민중’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면서 민중미술의 태동과 함께 민중문학으로 정리된 참여 문학은 시적 패러다임이나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이는 시의 저변 확대와 시의 다양화라는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었지만, 자기 시학의 미비라는 시적 수준의 문제도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때 신경림 시인의 시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함께 서정성으로 우리 농촌의 현실을 노래, 개성 있는 시의 영역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시절에 존재했던 문학적 가치의 양가성을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문학이 불편부당한 현실에 대하여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문학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다고 보아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는 현실성과 서정성을 균형 있게 갖춘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신경림 시인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1975년에 출간된 첫 시집 ‘농무(農舞)’라고 하겠다. 그만큼 이 시집에서부터 시인의 시세계를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 ‘농무’도 농촌의 팍팍한 현실을 특유의 서정으로 노래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은 좋은 시이지만 같은 시집에 수록된 ‘겨울밤’이라는 시를 좋아해 전문을 소개한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헐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걸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뛰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1970년대 산업화의 와중에서 도시 빈민의 양산과 더불어 무너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뼈아프게, 그리고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시이다. 이러한 사회문제는 개신교 단체인 도산(도시산업 선교회)과 가톨릭 단체인 카농(카톨릭 농민회)의 활동과 문제 제기로 알려지기도 했다.

 서정시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농촌의 현실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현실 문제가 시인에게 체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이후 시인은 현실 문제의 천착에서 벗어나 순수 서정의 세계로 복귀한다. 이에 즈음해 시인에게 농촌, 혹은 고향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2014년에 출간된 시인의 11 번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에 수록된 시 ‘다시 느티나무가’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까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나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제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아름답고 아름다운 시집“이라는 박성우 시인의 추천사와 같이 노경에서 발견하는 인생의 면모를 관조하는 지혜가 시집에 가득하다. 지난 시절의 치열한 현실 인식을 대신하여 인생의 구비를 모두 겪어 얻은 지혜가 시에 안착했다고 할까. 시인의 나이 팔순에 이르러 얻은 지혜가 시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부음에 즈음하여 언론에서는 시인을 두고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리얼리즘이라면 문예사조로서의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창작의 자세와 지향점이라면 오히려 근접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에게는 그것이 시의 진정성, 시적 진술의 진솔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말하자면 시의 사실성은 곧 시의 진정성과 같은 것으로 시인에게 체화되지 못한 시적 진술은 공허해지기 쉽다. 마치 기자가 현장이 아닌 데스크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는 것과 마찬가지, 지양해야 할 점일 것이다. 물론 시에 있어서 상상력이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시인의 체험과 닿아있지 못하다면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경림 시인의 시는 이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신경림 시인하면 떠오르는 또 한 가지 서적이 ‘민요기행’이다. 처음에는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가 2집까지 출간되었던 책이다. 대학 시절에 1집을 읽고 2집까지 읽을 기회가 없었다. 우리 민요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시인의 서정과 맞닿아 있다. 일찍이 시인은 시에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울림‘의 중요함을 강조한 바 있다. 시에 내재된 리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다름없으니 이 또한 우리 민요와 전통 서정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예라고 하겠다.

 어쨌든 신경림 시인은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갔다. 이 세상에서 시의 밭을 일구었듯이 저세상에서도 터 잡아 시를 가꾸어가리라 믿으며 시집 ‘사진관집 이층’에 얹은 시인의 말을 옮겨 본다.

 시인의 말처럼 신경림 시인은 꿈꾸는 시인이었기에 삶이 축복이었을 것이다. 시인이라는 무거운 이름만 내려놓고 부디 죽어서도 시의 축복이 이어지길.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내게 큰 축복이다.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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