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풍경화의 신선한 발견 - 김주경

by 밤과 꿈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캔버스에 유채, 1927년


월북 화가 김주경(1902~1981?)은 오지호와 함께 창작과 평론으로 인상파를 국내에 도입하고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좌익 운동을 펼치다 1947년에 월북, 이후의 작품 활동과 이력에 대한 정보가미비하여 화가로서 그의 면모를 제대로 알기에는 한게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에 남아있는 작품도 많지않은 데다가 활동 시기도 짧아 화가로서의 연혁을 언급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의 연혁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화가 김주경은 1929년 일본으로 유학, 동경미술학교 사범과를 졸업했다. 미술학교 재학 중이었던 1928년에 결성, 이듬해에 창립전을 개최했던 초창기 서양화 그룹인 녹향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펼쳤다.

진보적 경향의 미술 그룹이었던 녹향회에서 김주경은 오지호와 함께 민족적, 계몽적 성격이 짙은 그림을 선보였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2회 전시회를 끝으로 녹향회는 해산하게 되었다.

이후 1935년에 오지호와 함께 인상화에 심취하게 된 김주경은 오지호와 함께 '오지호, 김주경 2인 화집'을 출간, 각각 10점 씩의 그림과 함께 오지호의 '순수 회화론', 김주경의 '미와 예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수록하여 화업과 더불어 미술 이론가 및 평론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좌익 미술단체의 대표로 활동하다 1947년 월북, 평양미술학교를 설립하고 1958년까지 대학으로 승격한 이 대학에서 학장으로 재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농촌에서 농부들과 생활하면서 농촌의 삶과 풍경을 그렸다고 전해질뿐 그의 사망 시기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남아있는 김주경의 많지 않은 그림 중에서도 가장 초기작인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일본 유학 중이었던 1927년에 제작되어 1929년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따라서 화가가 아직 인상파의 화풍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사실주의적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성감과 동세에서 표현주의적인 효과가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의 구성은 근경에서 원경에 이르는 거리감이 압축되어 감상자에게로 바짝 다가서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감상자의 시선은 그림 속 양산을 쓴 여인의 시선과 동일하게 골목길을 따라 앞으로 전개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이 그림에서는 시선의 전개에 따라 원경이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과는 역으로 감상자에게로 풍경이 다가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화면의 구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반면에 원경의 한가운데에 경성부청사(지금의 서울시청 구청사)를 배치하여 꽉 찬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원경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좌측으로 한번 꺾음으로 해서 평면적일 수도 있을 공간에 깊이감을 주고 있다. 이에 더불어 더 멀리에 북악산의 연봉이 원경에 더해지면서 풍경의 동세, 즉 다가섬과 물러섬이 조화를 이루어 감상자에게 균형감 있는 풍경의 상을 온전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면 속 양산을 쓴 여인과 동일선상에 위치한 한 그루 나무의 효과를 주목하면 화가의 세심한 공간 배치에 감탄하게 된다.

이 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그리고 나뭇가지와 잎들이 화면의 중앙으로 방향성을 가짐으로 해서 화면의 구성에 안정감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근경에서 화면 속 오브제를 감싸고 있는 듯하면서 원경의 산봉우리들과 좋은 대비를 이루어 깊이 있는 공간 창조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서양화가 온전히 자리잡기 이전에꽃 피우기 이전에 그려진, 이런 역동적인 그림을 만나는 기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