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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Feb 05. 2016

화요일의 너에게 쓴다

이건 우리 얘기야


화요일은 그나마 여유로운 날이었다.


여름이었고, 너는 공강, 나는 오후 수업밖에 없는 날이었으므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만났다.

찬란했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 나를 구박하면서 너는 날 이리저리 끌고 가 맛있는 걸 먹였다. 먹는 날 보며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쥐어주고, 공원을 걸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심술을 부리고 빙글빙글 너를 놀려댔다. 그땐 그냥 그게 좋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는 나를 보며 웃었고 뽀뽀를 퍼부었고 놓으면 사라지기라도 할까 꼭 끌어안고 놔주질 않았다. 더운 날씨에 내가 짜증을 내도 금세 다시 잡아줬다. 그게 못견디게 좋았다. 그러다 갈 시간이 되고 타야할 버스가 오면 너는 나를 보내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종일 연락하다 학교가 끝나면 또 당연하다는 듯이 만나 밥을 먹고, 일을 가고, 다시 만나 밤산책을 했다.


매일같이 만나던 어느날은 함께 손을 잡고 네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갔다. 멀고 먼 곳에서 하루종일을 걷고, 생전 타보지도 않은 자전거를 탔다. 미안, 자전거 못 타는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우리는 네가 좋아하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온종일 걷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푸스스 웃고, 밤이 될 때까지 함께 있었다. 연애였구나, 그때 우리가 한 건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어.


여름이 가고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을 때도 넌 여전히 따뜻했다. 일이 끝나고 버스에서 내리면 너는 겉옷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이렇게 추울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얇게 입고 다니냐며 날 구박하면 나는 웃으면서 '니가 기다릴 거 아니까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도 '그건 그래' 하며 웃었다. 나는 원래 워낙 제멋대로인 사람이었고 허술한 게 많은 애라서 나를 챙기는 너는 한 계절이 지나고 두 계절이 가는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참 바쁘게 만났지 우리.




너는 불안해 하는 내 손을 잡으면서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다. 오래 보자고 약속했었다. 손 놓지 않겠다고, 약속 꼭 지킬 거라고. 그랬었다. 나는 그게 다 진짜였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런 약속들이 무색하게, 그 가을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흐려지기로 약속했다. 그러기 싫어서 노력도 참 많이 했지만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걸, 결국엔 둘 다 인정해야만 했다. 울고 보채고 악을 써도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지치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넌 그걸 좀 더 빨리 알아챘던 거였지.


생각해보면 만나는 내내 너는 나를 기다렸었구나. 학교에 간 나를, 일을 하는 나를, 다른 사람과 웃고 있는 나를 너는 내내 기다리고 참고. 그러다가도 돌아오는 날 보면서 그대로 웃어줬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나는 몰랐다. 짐작만 했어. 그래서 나를 끊어내고 사라진 너를 휘저으면서 내내 후회했다. 더 잘할걸, 너를 만나는 시간동안 더 많이 웃을걸, 더 예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걸, 끝까지 좋은 기억이었으면 했는데. 그렇게 한바탕 후회를 하고 미워했다가 그리워했다가 울고 불고 몇 개월을 지내고 나서야 좀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함께 보기로 약속 했던 영화를 보고 너에 대한 글을 써도 연락을 참을 수 있을만큼. 헤어지던 역에서 너를 우연히라도 만나고 싶어 두리번거리지 않을만큼.




그리고 오늘 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만큼 너도 내가 보고싶었다고,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매만지고 고민하며 한참 적었을 글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네가 무슨 마음일지 짐작만 할 뿐이지 나는 아직도 널 잘 몰라. 그래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백번의 약속을 모두 어긴 너지만 마지막 약속만큼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만나기로, 곁을 지키기로,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기로 했던 그 약속까지는 깨지 말았으면 해.


그러니까 기다리기로 한다.

언젠가 네가 나를 기다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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