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신호를 구분하는 법

-‘페이크와 팩트’,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김보은 옮김/ 디플롯

by 인간아

1. 상대를 잘 선택해서 전투를 해야 하는 까닭

세계 제3차 대전의 발발이 속도보다는 진실, 행동보다는 사고를 선호했던, 분석적인 한 인간에 의해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는 서두는 아찔한 공포와 함께 우리를 이 책에 몰입하게 하기 충분하다. 다만 중간으로 가면서 처음 들어보는 논리적 오류들의 쇄도와 낯선 용어들은 난이도가 높아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쯤 사례와 함께 제대로 정리해 두면 좋을법한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았다.

내가 접한 ‘분석적 사고의 삶’에 대한 통찰은 매불쇼의 ‘양비론’에 대한 설명이었다. 양비론이 ‘심판자적 위치에 있으나, 시비를 따지기 싫어하는 자의 지적 나태’라는 일갈은 들을수록 새기고 싶은 내용이었다. 양비론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시시비비를 따지기 싫어하고 그러면 세상은 결국 이해득실만 따지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일이, 바로 작가가 이 책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분석적 사고’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시비를 가리는 일은, 시비를 제대로 가리겠다는 마음이 되어 있는 자들끼리는 가리고 난 후 져도 의미가 있지만, 개소리(Bullshit)로 일관하거나, 우기고,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퍼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대를 점령하고자 하는 사람과는 피하는 것이 낫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라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Never argue with stupid people, they will drag you down to their level and then beat you with experience.” 이 문장도 있지 않은가.

(어리석은 사람과는 절대 논쟁하지 마라. 그들은 너를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경험으로 너를 이길 것이다.) .

책에서도 러셀 월리스(진화의 공동 발견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존 햄프턴에 맞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해 보였지만, 햄프턴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약속한 상금을 주지도 않았으며, 법적 분쟁으로 시일을 지질 끌다 결국 월리스의 아내에게 독설 가득한 협박 편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상처를 남겼다. 월리스는 ‘역설가’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드 모르간 교수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는 걸 끝으로, 15년 동안 인생의 가장 큰 후회만 남긴 전투를 치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월리스가 아니라도 시비를 가리는 일은 참 고되고 어렵다. 특히나 서열, 문화, 눈치, 차별 등이 범벅된 한국 사회에서 분석적 사고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자칫 외로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는 일이다.

쾌감을 느끼게 했던 대목도 있었는데, 1860년 악명 높은 옥스퍼드 자연사 박물관 논쟁 장면이다.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현대 유인원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지만, 오언의 계략에 따라(의도적인 암시를 우회적으로 주입하면 부주의한 사람들이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리라는 예상) 병든 다윈은 원숭이 몸에 자신의 얼굴을 그린 풍자만화로 조롱당하고 있었다. 그날 주교인 윌버포스는 전날 오언의 전략에 따라, ‘당신이 유인원의 후손이라면 조부와 조모 중 어느 쪽이 유인원이었냐’는 악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다윈의 불도그라 불렸던 헉슬리는 “만약(…) 저 질문이 내게 초라한 유인원을 조부로 둘지, 아니면 본질적으로 천부적인 인간이지만 엄청나게 비열하고, 뇌물이나 바치며, 아직도 아첨이나 하며, 진지한 과학 논쟁을 조롱이나 하겠다는 사소한 목적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간을 조부로 둘지 묻는 거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유인원이 되는 것을 선택하겠소(171쪽)”

쾌도난마. 그러나 결국 이 논쟁 또한 광대극으로 끝났고, 분석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면(아니 상식이 제대로 통하는 사람이면) 응당 인정하고 원해야 할 진리가, 통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우리도 얼마 전까지 숱하게 겪어 왔다. 매스컴이 기계적인 중립만을 취하며, 스스로 소음 증폭기로 전락하여 ‘괴이’를 ‘정상’으로 만드는 현실(335쪽)을 지긋지긋하게 목도하지 않았던가.

기계적 중립은 언론이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증거의 무게가 반박의 여지없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도, 똑같이 타당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객관적으로만 대상을 다루는 것이다. 언론이 공정성이라는 환상에 집착하여 기계적 중립의 잣대를 들이대면, 끔찍한 생각과 허튼소리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사과학과 과학은 해당 주제에 과학적인 논란이 있다는 거짓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대에 올릴 자격이 없는 사람을 같은 비중으로 출연시키는 것은 언론이 어리석거나,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안할 수가 없다.


2. 신에 필적하는 기술을 가지고, 중세 시대 같은 제도 안에서, 원시인의 감정을 가진 인간(에드워드 O.윌슨, 33쪽)이 살아남는 법

카한의 연구는 과학과 기술 혹은 정책과 증거 논쟁의 원인이 정보 부족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이념적 동기가 인간의 추론 능력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넥서스에서 유발 하라리도 정보량이 많아지면 사람들이 진실에 가까워지리라 믿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고 코웃음쳤다.

이 책은 기존의 내 생각에도 변화를 주었다. AI 및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앞으로 데이터센터 등 엄청나게 소모될 전기를 감당할 자원으로 원자력 발전이 강조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손쓸 수 없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전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것이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기후변화를 가속시키는 피로스의 승리(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른 실속 없는 승리)라는 작가의 말에 버퍼링이 걸렸다. 또한 체르노빌의 기형아 사진이 체르노빌의 결과와는 상관없는 일반 기형아의 사진이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면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오명의 책임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음모론, 진리가 아닌 것을 한결같이 주장하며, 우리를 탈진실의 세상에 살게 하는, 같은 종인지도 의심스러운 사피엔스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장은 우리 자신의 주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무관심과 침묵은 위험할 정도의 순응을 가져오기 때문에, 분석적 사고를 하는 회의주의자가 되는 것만이 허튼 소리의 맹습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강력한 방패라고 강조한다. 싸구려 냉소주의와는 구분 지으라는 당부와 함께 뒷부분에 그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남아 번영하려면 우리의 의견과 신념이 사실과 함께 진화해야 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신만의 사실을 조작할 권리를 없다는 작가의 말이 다가온다. 인류는 호기심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있고, 높은 분석적 사고는 오히려 열린 마음과 깊은 연관성을 보인다는 작가는, 새로운 주장을 대할 때 우리가 확인해야 할 요약 목록을 제시한다. 참고하시라고 요약만 적어 본다.

▪추론: 전제가 제시된 결론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추론 과정에서 왜곡되는가

▪수사학: 어떤 유형의 주장인가? 주장을 입증할 책임은 항상 주장하는 사람에게 있으며, 상대방을 더럽히려는 시도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인적요소: 동기화된 논증이나 확증편향에 면역력이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신뢰도가 떨어지는 이야기꾼이다. 증거가 주관적이거나 일화에 불과하다면 인식과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정보출처: 신뢰할만한, 입증할 수 있는 출처인가.

▪정량화: 주장을 정량화할 수 있나. 숫자들의 맥락은 중요하고, 통계는 유용하나 조작되어 부주의한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연관성이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주장을 검증하고, 최소한 원칙적으로 반증할 수 있는가? 과학적 가설처럼 보인다면 훌륭한 과학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화물 숭배 과학에 의존했는가?


3. 나 자신의 주장 제대로 비판하기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이 두려운 시대이다. 안전한 공간, 안전한 관계가 아니라면 쉽지 않다. 또한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은 ‘반향실 효과’를 떠올리게 해서 떫떠름한 면도 있다. 얼마 전 교실에서 ‘자율주행차의 딜레마’ 관련하여 토론하다 토론 잘하는 두 아이가 소리 높여 언쟁하는 바람에 수업 분위기가 싸해진 순간도 있었다.

맥락과 보호벽을 벗겨낸 뒤 극단적인 주장을 일삼는 사람들, 품질이 좋은 뉴스는 의견과 정보가 섞이게 마련인데 양극화된 주장 속에서 사람들은 점차 의견과 정보를 구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363쪽)

관대한 사회는 결국 편협한 자에게 압도당한다는 것이 관용의 역설이라며, 작가는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편협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한다. 인류가 당면한 중대한 숙제들을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 작가는 과학자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기 전에 숙고하며,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 포용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작가는, 타인의 오류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오류도 용서해야 인류가 실수를 통해 배우고, 번영할 수 있다고도 말 한다.

나 또한 건강하고 건설적인 담론과 토론을 꿈꾼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 스스로 분석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누구에게 내 주장을 쉽사리 펼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의심해 볼만한 적절한 질문만 부드럽게 던지고 나누어도, 꽤 안전하고 괜찮은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깐깐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으로만 인식되지 않기 위해, 치고 빠지는 적절한 대화의 기술이라는 불편함은 장착해야겠지만.

현대인의 말하기 방식인 ‘잡담(빈말)’의 의미가 재소환된다. 오랜 시간과 깊은 숙고를 요구하는 것들이 건성으로 다루어지며 단순화되는 원리(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136쪽)와 분석적 사고를 하기 힘든 현대인의 사고방식도 이어져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산적한 인류의 숙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다시 한번 사피엔스십의 사명을 읊어 본다. ‘지식과 연민의 씨앗을 뿌리고, 세계인의 대화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에 집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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