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맞지 않는 집중력을 위하여

'도둑맞은 집중력' 발제문

by 인간아


1.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한석규와 청안스님이 대숲을 거닐며 찍은 sk텔레콤 광고의 유명했던 카피 문구이다. 그 때 만난 ‘또 다른 세상’은 핸드폰보다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통신사 스스로 넌지시 인정하고 존중하는 철학이 담긴 문구였기에, 그것이 광고를 위한 기발한 제스처였다해도 감동이 있었다. 핸드폰이 울려대는 세상에서 나 스스로 제어하고 선택한 결정은, 울창하고 푸른 대숲을 거니는 두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충분히 매력적이면서 철학적 사색이라는 아름다움을 이끄는 것이었기에.


이 때만 해도 ‘끈다(turn off)’는 행위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통제권하에 있는 것이었다. 충분히 인간이 조종 가능한 기계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수없이 ‘내침’을 당하면서 마이오네트의 인형처럼 조정당하고 있다.


난 책을 읽으면서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망에 잡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로 숨만 헐떡거리고 있는 무기력한 생명체가 된 기분이었다. 하나도 아닌, 수없이 연결되고 복잡한 방해 요소들의 그물망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끌려가는 내가 연상되었다. 시야는 흐릿하고, 가끔 바닥에 끌려 부딪힌 몸에는 생채기가 생기고 피가 나는데, 내 상처를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문득문득 나는 걱정과 두려움, 불안함과 직면하고 있었다.


요한 하리는 이번 여정을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개인 차원에서 산만함으로 가득 찬 삶은 훼손된 삶이고, 집중력 문제는 사회 전체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면 그것을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며 함께 하자고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계속 심각한 수면 부족과 과로 상태에 있다면, 3분마다 작업을 전환한다면, 우리의 약점을 파악하고 조종해 우리가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게 하는 소셜미디어 웹사이트에 추적되고 감시된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각성 상태가 된다면, 에너지의 급상승과 급강하를 일으키는 식단을 먹는다면, 뇌에 염증을 일으키는 독소로 가득한 화학물질 수프를 매일 들이마신다면, 당연히 우리 사회의 심각한 집중력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 미쳐 날뛰는 세상에서 어떤 망나니로 살 것인가


미쳐 날뛰는 세상이 있다. 송경동 시인의 시에 나오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200여대의 빈 유모차를 보면서 가슴 아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 주식에 혈안을 올리면서 전쟁의 위기를 기회로 맞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있다’가 아니다. ‘많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가속화될수록 많아진다.


정크푸드와 식용색소를 비롯하여 정제탄수화물과 가공식품, 질 낮은 기름으로 이루어진 음식같지 않은 음식들이 우리가 손 뻗기에 너무 가깝게 자리한 채 비만을 과속화한다. 이에 대한 당뇨와 다이어트 관련 주식들이 기업 가치를 올리고, 나 또한 ‘일라이 릴리’나 ‘노보노디스크’같은 기업의 주식을 보면서 이런 기업을 사면서 주주로서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잠시나마 고민했었다. 이런 기업의 주주가 되면, 결국 암울한 미래를 언덕 삼아 비벼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 주식 가치가 올라간들 그런 세상을 바라고 꿈꾸는 건 아니기 때문에.


비만을 만드는 세상과 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다시 약물로 잠재우려는 세상 사이에서, 알고리즘으로 우익화되고 부정편향이 오래도록 우리 시선을 붙잡는 세상에서, 분노에 보상하고 자비에 벌을 주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망나니가 될 수 밖에 없다. 비난은 더 하고, 이해는 덜 하는 그런 망나니 중의 하나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난 어떤 칼춤을 추는 망나니가 될 것이며, 누구의 목을 벨 것인가. 나 자신의 목을 내놓고 추는 춤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내가 사는 식품과 소비재를 먹고 쓸 것이다. 딸아이의 비만과 내 과체중으로부터도 남편 말대로 어쩌면 난 죄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죄책감(자기 처벌적인 수치심)은 좋은 대화방식이 아니기에 개선할 방안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3. 스태디움라이트를 받으며 경기장에 들어설 준비는 되었는가


제임스는 오늘날 빼앗기게 된 집중력의 세 가지 형태를 제시했다. 즉각적인 행동에 집중하는 스포트라이트. ‘장기적인 목표, 그러니까 시간이 드는 프로젝트’에 적용할 수 있는 집중력인 스타라이트. 애초에 자신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 파악하게 해주는 집중 형태인 데이라이트(햇빛)가 그것이다. 오로지 성찰과 공상, 사색을 지속할 때 이 빛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덧붙여 요한 하리는 네 번째 집중력인 스타디움 라이트, 즉 경기장의 빛을 제시했다. 서로를 보고, 서로의 소리를 듣고, 집단의 목표를 세워 이를 이루고자 함께 싸우는 능력이다. 이 책을 쓴 목표일 것이다. 마치 네가 느끼는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도 대안은 있으니 무력해지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연대의 힘으로, 함께 치유를 돕는 힘으로 세력을 향해 싸우자고.


디지털 교과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자책 읽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시점에서 많은 우려와 논란을 무시하고 진척되고 있는 교육 현실이기도 하다. 긴 글 읽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독서 하나만의 결핍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아는 것이 병이라고 책을 읽으며 더욱 어깨가 무거워졌다. 내가 싸우고 있는 적이 너무나 쎈 강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 승부욕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김명희씨의 칼럼에서 얻었던 성찰이 떠오른 것이다. 요한 하리가 지적했던 부분과 비슷하나 훨씬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눈앞에 벌어진 문제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근본적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딜레마, 그리고 상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희생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드러낸다.”


난 교사들이 집중력을 키워 프레임을 크게 보고, 근본적 문제를 성찰해 보는 사유가 더욱 필요해지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정보들과, 매일 닥치는 문제 해결에도 벅차, 관심도 끄고 싶고 깊이 생각하는 것 또한 쉽진 않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품고 싶은 칼럼 내용이었다. 좁은 시야에 휘둘리지 않게, 내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잊고 행동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하리가 주는 울림의 깊이를 느낀 만큼, 경기장에 들어서서 함께 알려내고 작게나마 소리내고 싶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죽는 세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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