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후 10년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왜 합가를 하게 되었는지는 연재글 1부에서 언급했기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합가 초기에는 시어머니와 여행을 자주 갔다. 같이 살고 있는데 아이들만 데리고 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1년에 1번 정도는 가까운 곳이라도 같이 여행을가려고부질없는 노력을 꽤 했던 것 같다.
오늘은 그 수많았던 여행 중 가장 끔찍한 여행을 하나 소개한다. 이 일을 계기로 시모와 함께 가는 여행을 단순하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때는 매주 일요일이 휴무였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출발하면 당일치기로 여행이 가능했다. 근교에 자연이 아름다운 계곡에서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초록빛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생각하며 어느 날, 가족들에게계곡에 놀러가자고 제안했다.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난 조수석, 뒷좌석에는 시부모님과 아이 둘이 착석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얘.. 너희 000 알지? (모르는 사람임) 아버지 친구분, 그분이 미국에 갔을 때 말이다..."
이상하게도 그 누구도 어머니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지는 것 같아 사실은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네, 네... 네...."
라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왜, 있잖니, 그분 아들 000이( 이 사람은 더더욱 모르는 사람임) 000 대학에 교수로 있잖니... 그래가지고..."
"네..."
"근데, 그 000이 000 교회 권사님 딸 000(그냥 모르는 사람)이랑 결혼을 했잖니? 너도 알 거다. 글쎄, 어떻게 그 둘이 미국에서 만날 수 있니? 인연이 대단하지 않니?"
"네."
시아버지 친구분 중 이름을 처음 들어 본 분의 아들과 난생처음 듣는 모 교회 권사님의 딸이 결혼했다는 이야기인데 등장인물 중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요한 건 차 안에서 시아버지는 주무셨고 남편은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운전만 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계속 '에미야, 있잖니.' 하면서 자꾸 모르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읊어대는데 정말 괴로웠다.
"있잖니, 너 000 알지? 아버지 친구분 중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일하셨던 분(모름), 그분이 와이프랑 사실......"
"저 사실 모르는데요. 몰라요. "
"뭐? 왜, 너 결혼식에서 인사도 했잖니!"
"기억이 안 나요.어머니..."
오전 내내 모르는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경제적인 문제까지 듣고 나니 진이 빠졌다.특히 시아버지의 친구의 며느리의 직장에서의 애로사항을 내가 왜 경청해야 하는지 몰랐다.
계곡에 도착해서 보니 시아버지는 아이들과 놀아주겠다고 물가로 가 계시고 남편은 돗자리를 펴 놓고 음악을 듣겠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시어머니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물가에 가시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얘, 너 왜 000(모르는 사람)라고 기억나니? 아버지의 고등학교 동창인데 포항에서 지금 살지 않니? 기억나지?그분이 말이다. 그 병원을 하는데 그분 아들이 그 병원을.."
"어머니, 저 기억 안 나요."
"왜 기억이 안 나니? 결혼식에도 왔었는데..."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이들은 과자를 먹고 시아버지는 또 피곤하다면서 눈을 감으셨다.
'아, 진짜... 또 시작하겠네...'
역시나 시어머니는 다시
"에미야, 너희랑 근교라도 이렇게 놀다 오니 너무 기분 좋다. 얘, 그런데 너 혹시 000(또 모르는 분) 기억나니? 아버지 회사 다닐 때 같이 일하셨던 분인데... 몇 년 전에 재혼하셨잖니? 기억나니? 글쎄 그분이 그 연세에 말이다.정말 좋은 사람과 재혼을 했는데 말이다 나이 차가 꽤 난다. 그 와이프를 난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한 두 번 만나보니 마음이 참 곱더라고... 그런데 얘, 그 아버지 친구분이 돌아가셨잖니(갑자기 흐느껴 우신다.)... 으흑흑... 그 이후에도 그 마가다(그 여사님 이름으로 추정)를 지금까지 만나잖니. 얘, 사람은 참, 한 두 번 만나서 모르는 거다. 난, 참, 그 마가다가 너무 불쌍해.... 흑흑흑, 참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머니, 죄송한데,저는 어머니가 누구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들으면 안 될까요? 저 너무 피곤해서요."
" 지금은 말이다. 000 봉사단체에 가입해서 활동을 한단다. 유산을 많이 받아서 일할 필요는 없는데 놀지도 않고 불쌍한 사람을, "
"어머니, 저 피곤해요.. 좀 쉴게요..."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자선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을, "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시어머니는 갑자기 귀가 안 들리시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짜증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아, 몰라! 이제 안 듣겠어!'
"너, 혹시 내 친구 000 알지? 이번에 몇 년 전에 퇴직하고 쉬는 친구, 그 며느리가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데 실력이 있어서..."
내가 듣건, 듣지 않건 시어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어떻게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밥 먹고 화장실 갔다 오는 시간 빼고는 잠깐낮잠도 안 자고 내리말을 할 수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