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에서 나의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상대는 늘 무심했고 나는 늘 맞춰왔다.
그리고 결국엔 혼자 버티다가 끝났다.
혹은 반대로 나는 분명 잘해주려고 했던 행동과 말들이
그게 오히려 상대에겐 상처가 됐다고 한다.
한때는 서로 사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가 더 옳았는지 누가 더 많이 상처받았는지를 따지게 되고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의무와 죄책감으로 느껴진다.
이런 마음이 반복되면 어느새 관계 속의 나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는 감정의 프레임 안에 갇히게 된다.
연애는 대체로 똑같은 패턴을 만든다.
한 사람은 더 표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더 침묵하고,
한 사람은 가까이 가고, 다른 한 사람은 멀어진다.
그리고 상처받은 쪽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느끼고
상처 준 것 같은 쪽은 가해자라고 느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애에서 그 누구도 전적으로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관계 안에서 내 감정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지 못한 채, 상대의 태도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는 자기 내면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옮겨보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내가 억누르고 있는 불안, 상처, 분노, 결핍이 상대의 행동을 통해 자극될 때 우리는 그것을 상대가 만든 감정이라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조금만 거리를 두어도 버림받을 것 같다는 강한 불안이 올라오고 그 불안이 상대의 잘못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감정은 사실 상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감정이 자극된 것일 수 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라는 자각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의 행동에 내 감정을 맡기게 된다.
그 사람이 웃어주면 괜찮고 그 사람이 차갑게 굴면 하루가 무너진다.
그 사람이 연락을 하면 안도하고 하루가 지나도 답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이 모든 감정은 분명 실제로 일어나지만,
그 감정이 온전히 상대의 잘못으로만 해석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멈추게 된다.
감정은 일어나지만 그 감정이 자극된 배경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믿는 순간 나는 상대에게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죄책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게 된다.
이 두 감정 모두 결국은 자신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지 못한 감정의 고립 상태다.
관계를 고통스럽게 반복하는 사람일수록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 속에서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 안에서 상처도 주고, 상처도 받는다.
때로는 너무 많이 줬다고 느끼고 어떤 날은 내가 너무 많이 요구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감정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이다.
사랑이란 결국 내 감정의 무게를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책임지지 않는 연습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