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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조력 자살 (미야시타 요이치 지음)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by 이병철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약 3~4년 전 처음으로 [죽음學]이라는 용어를 접했다.

The Science of Death.

죽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서울大 정현채 교수가 저술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가?”라는 책과 함께 그의 강의를 들었을 때였다.

사후 세계 혹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막연하고 언젠가 다가올 알 수 없는 미래의 한 시점.

나에게도 해당되는 사건임에도 마치 나와 무관한 것 같은 그런 추상 명사...



죽음학에 관한 것은 상기의 서적이 입문서가 될 성 싶고 제목의 책 [조력자살]은 죽음의 방식에 대한 것이다.

웰빙(Well living)만큼이나 웰 다잉(Well dying)도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존엄사라든지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공론이 서서히 달아올라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가 수시로 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공감대가 절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작가 미야시타 요이치는 미국과 스페인에서 공부한 저널리스트이다.

고시마 미나라는 50대 초반의 일본 여성이 다계통 위축증을 앓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모든 근육이 위축되어 심지어 턱근육과 혀까지도 통제가 되지 않게 된다. 희귀병이라 마땅한 치료제도 없이 소위 '자리보전'이라 일컫는 완전 무기력한 환자로 전락하게 된다. 고시마 미나가 안락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일본에서 금지된 안락사를 실행하고자 스위스로 여행하여 자신의 결정 하에 가족들 품에서 평온한 종말을 맞게 되는 과정을 르포르타주 형태로 저술한 내용이다.


작가의 의도는 절대 안락사를 권장하거나 그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생의 마감을 어떤 식으로 결정할 것인지 이제는 다양한 형태를 두고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순간적인 충동이나 감정으로 종지부를 찍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의 삶이 비단 자기만의 것이 아닌 가족 간의 끈끈히 얽혀 있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자 한 것이 그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튼 고지마 미나는 라이프서클이라는 안락사 단체에 등록하여 조력자살(助力自殺)을 추진하는데, 그 단체는 스위스에서 합법적인 조직이지만 등록만 한다고 해서 진행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조력자살이 시행되기까지 다양한 심사가 필요한데, 등록 후에 의사의 진단서(Medical Report)와 ‘조력자살을 희망하는 동기서’를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중 하나의 언어로 송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환자 본인이 명료하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그리고 다음의 네 개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1.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다.

2. 회복의 전망이 없다.

3. 환자가 바라는 치료 수단이 없다.

4. 명확한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면 환자는 스위스로 건너가게 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의사에게 두 번의 면접을 치러야 한다. 실제로 위의 네 조건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안락사가 가능해진다. 라이프서클에서는 수액에 극약을 넣은 후 환자 자신이 스토퍼를 누르는 방식으로 조력자살이 시행된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환자는 자신의 병세가 위독해져서 스위스로 이동할 기력이 없거나 혹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지 못하게 될 경우도 고려해야 하며, 심지어 이동 중에 병세 악화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 등의 동반자가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동 및 체류 기간 동안의 비용은 물론 조력자살에 소요되는 경비도 준비해야만 한다.


종합해보면, 안락사라는 것은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는 상태라야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종말을 스스로 선택하는 철학적 확신이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적 판단은 Medical Report로써 대체 가능한 것이고 경제적 부담도 감당하면 되 는 요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적 문제이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기결정론에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조력자살의 스토퍼를 목전에 앞둔 고지마 미나의 말을 빌리면,

“무서운가 무섭지 않은가는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더라고요. 무섭지 않다고 느껴진 계기로 여기에 이르기까지 제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생물이라는 거죠. 죽는 타이밍은 사람에 따라 늦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고 차이는 있겠지만 확실히 존재해요. 그 타이밍이 저에게는 지금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예고된 죽음을 앞두고 가족과 충분히 작별을 고할 수 있고, 모두가 각오한 후에 결행하는 것이 안락사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준비도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절대 안락사를 권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안락사에 대하여 보다 심도 깊은 문제 제기를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완화 치료, 세데이션, 존엄사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구별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1. 완화 치료 (Palliative Care)

- 정의: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치료

- 목적: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고통 완화와 정서적 지지에 초점

- 예시: 통증 조절, 호흡곤란 완화, 가족 상담, 영적 돌봄 등

- 법적 지위: 한국에서 합법이며, 호스피스 제도와 연계됨

2. 세데이션 (Sedation)

- 정의: 말기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식 수준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의료 행위

- 종류:

- 간헐적 세데이션: 일시적으로 진정제를 투여

- 지속적 깊은 세데이션: 죽음 직전까지 의식을 낮춘 상태 유지

- 목적: 고통 완화 (죽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님)

- 법적 지위: 한국에서는 의료윤리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됨

3. 존엄사 (Dignified Death)

- 정의: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 행위: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항암제 등 생명 연장 치료 중단

- 목적: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삶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마무리

- 법적 지위: 한국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됨

4. 안락사 (Euthanasia)

- 정의: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

- 종류:

- 적극적 안락사: 치사 약물 투여 등 직접적인 생명 종료

- 소극적 안락사: 치료 중단을 통해 자연사 유도 (존엄사와 유사)

- 목적: 고통 해소와 죽음 유도

- 법적 지위: 한국에서는 불법 (형법상 살인 또는 촉탁살인으로 간주됨)



안락사에 대하여 반대 이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완화 치료만 잘 발달되어 있다면 안락사가 굳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종말기 의료를 둘러싸고 두 가지 방향으로 진작부터 논의되어 왔다. 하나는 고통을 오래 끄는 것보다 본인이 원한다면 빨리 죽게 해주는 것이 좋다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 시기는 섭리에 맡기고 고통을 완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의료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2000년 이후 네덜란드 등에서 안락사의 법제화에 이르렀고, 후자는 영국을 중심으로 완화 치료에 집중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안락사.jpg


생명의 종결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안락사는 점(點)으로 마침표를 찍는 행위다. 한편 완화 치료는 선(線)으로 마지막까지 잇는 길이다. 즉 죽음까지의 과정을 중요시 한다.

문제는 고통의 강도와 기간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죽음에 대한 성찰이 병행되어 죽음으로부터 역으로 시작되는 삶의 의미를 깨닫는 그런 공론의 장이 자주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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