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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12. 2024

필통


 바느질 자국이 여러 군데 난 봉제 필통. 붉은 잉크가 묻어있다. 필통 안에 지우개 가루가 나뒹군다. 지퍼의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날카로운 샤프로 필통 옆면에 구멍을 냈다. 빨아 널어두어도 금세 더러워지는 파란 천. 글자나 숫자를 만들게 될 것들이 곤히 잠들어있다. 으깨지는 중인 지우개. 야윈 샤프심. 사라지는 펜촉. 가만 겹쳐지는 글씨. 볼펜 자국으로 가득한 몸. 터져 나오도록 쓴다. 그 끝을 꽉 조여서 들고 다녔다. 닫으면 밤 열면 아침,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루가 시작된다. 몸통이 점점 굵어진다. 필통에 딸기향이 나는 립밤을 넣은 친구를 본 적 있다. 필통 안의 물건들이 흘러나와 바닥에 떨어진다. 무릎을 접고 바닥에 손을 짚는다. 적고 지우며 끝없이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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