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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Aug 26. 2024

지루한 천국, 재미난 지옥

잘 말하지 않는 미국살이가 어려운 점

미국살이에 대한 다른 사람 글에 어느 한인이 말하기를, ‘미국은 지루한 천국, 한국은 재미난 지옥’이라는 말이 있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미국의 하루하루는 말 그대로 평화 그 자체다. 내 지인은 미국서 집을 사고나서 뭐가 제일 좋냐고 물으니, 하루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뒷마당에서 음악을 듣고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지는 석양을 바라볼 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그 고요와 적막이 너무도 좋다고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느낀 문화충격은 주말마다 끊이질 않는 각종 경조사였다. 1년 52주 중에 절반은 그런 행사로 채워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집은 서울이 아니다 보니 한 번 서울 나갈 때마다 밀리는 차에, 미국서 입을 일 없던 정장까지 입는 날이면 돌아와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미국에서는 주말이 고요와 적막 속에 지나가곤 했는데, 이건 주말마다 전쟁치르듯 나갔다 오곤했다. 


그러면 그것은 그런 일이 없는 미국사는 장점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년 내내 주말에 일이 없어보라. 말 그대로 ‘지루한 천국’이 된다.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없고, 만나야할 사람도 없는 일상. 특히나 우리는 이민이 아니고 유학이다보니,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끊어지고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혹자가 제주살이의 환상을 깨야한다면서, 이민이 뭔지 체험하고 싶으면 제주 와서 몇 달만 살아보라고 했다. 육지 사람이 제주 가면 사람 만날 일이 있겠는가. 가끔 찾아오는 손님 말고는, 제주에서 도무지 어울릴 일이 없을 것이다. 너무나 평화로운 제주 바다와 오름들이지만 서울살이에서 진절머리난 각종 인간관계가 아예 없는 삶은 사람들을 적잖이 당황시킨다. 


그나마 제주는 자연에 볼거리라도 있지, 시카고와 애틀랜타는 제대로된 깊은 산 한 번 보려면 차로 대여섯 시간은 운전해서 나가야 했다. 시카고는 바람이 세서 그런지 숲도 울창하지 않았고, 애틀랜타는 숲만 왕창 있었다. 

그러다보니 주말이 되면 가장 큰 ‘가족행사’는 ‘장보기’가 되었다. 한인마트 갔다가, 미국 마트 갔다가, 베드배스앤비욘드(주방욕실용품 체인점)에 가서 구경하다가, 쇼핑몰 가서 살 것도 없는데 괜시리 한 바퀴 돌며 버블티나 사먹다가, 그냥 그 삶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는 ‘힙스터’나 ‘주류사회’의 모임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무슨 화려한 파티 아니라도, 지인에게서 어디에서 무슨 공연한다, 누가 북토크를 한다, 그런 ‘최신’소식을 들어서 찾아다니는 것, 익선동이니 성수동이니, 요즘 핫하다는 곳에 가보는 것, 그런 것들이 ‘주류사회’의 일원으로서 누리는 혜택이란 걸, 미국에서야 깨달았다. 그런 관심사에 알맞은 소식을 소개해줄 지인이 있다는 것, 티비 예능에 나온 핫 플레이스를 안다는 것 등은 주류사회 문화를 ‘구독’(subscribe: 구독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한다는 증거다. 많은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은 주류문화를 구독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한국 예능 보는 것을 더 즐긴다. 한식 밥 먹으면서 한식기행을 틀어놓고 한식을 그리워하는 문화. 문화는 한국문화를 구독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주말마다 고정행사를 만들어 두고 거기에서 인연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다니던 미국 성공회 교회에서는 교단이 진보적이라 그런지 외국인에게 열려 있었고 우리가 우려하던 ‘트럼프 지지하는 가짜 교인들’을 만날까 걱정 안 해도 되었다. 주로 백인 노년층이 많아서 신기하게도(?) 일요일마다 꾸준히 교회 나오는 우리집은 환영의 대상이 되었다. 추수감사절 어간에 식사초대를 받거나, 동네 축제 퍼레이드 구경 파티나 성탄절 캐롤 부르기 모임 등에 자주 초대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한창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라, 가보지 못한 모임들이 되고 말았다. 마음만 먹으면 ‘백인 노인 문화’구독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미국 사람과 어울릴 기회 만들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지루한 천국’이 되는 것이다. 뭐든 내 뜻대로 할 수 있고, 굳이 가기 싫은 모임 안 가도 되는, ‘참 자유’가 있지만, 그만큼 삶에는 아무 드라마도 없는, 평범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일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디 한국과 미국 중간 세계(?) 없나요?!


나는 사실 예민한(sensative) 편에 속한다. 그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서, 세심한 관찰력과 예술성의 원천도 되지만, 도무지 평범해지지 않는, 매번이 새롭고 두려운 일상이라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트럼프 시대는 외국인 혐오를 일상으로 만든 시대였다. 게다가 코로나를 ‘차이니즈 쿵푸 바이러스’라고 불러대는 천박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외국인 혐오를 선동해댔다. 그렇게 ‘아시아인 혐오’가 일상이 되었다. 


길 가던 한인 할머니를 흑인 여자가 있는 힘껏 때려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장면, 지하철서 줄 서 있는 아시아인을 열차가 들어오는데 등 떠밀어 죽이려하는 일, 가족이 단란하게 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갑자기 웬 백인이 와서 ‘당장 차이나로 돌아가! 이 바이러스 덩어리들아!’라고 고함지르는 일 등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뉴스, 짧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났다. 그런 걸 볼 때마다 나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더욱 웅크러들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 무시, 특히 아시아 남자 무시는 잘 논점화되지도 않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자기들이 무시하고 멸시천대해봤더니 아시아인, 특히 남자들은 공공장소에서 체면 때문에, 혹은 부끄러움과 짧은 영어 때문에 잘 항의도 못하더라,라는 걸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갑자기 ‘다음편 비행기 타야할 사람’으로 지목되었지만 항의하다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나간 중국계 남자 의사 뉴스는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뉴스에도 ‘아시아인 혐오’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인 남자 혐오는 스스로가 만든 일이기도 하다. 그들이 여성을 혐오하고 무시한다는 것도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시아인 여성을 아주 특별하게 대한다. 미국 대다수 대학이 진보성의 산실 역할을 하는데, 인종, 문화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을 보여주려할 때, 아시아인 여자 교수를 대표적인 자리에 임용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물론 아시아인 여성이 실력이 출중한 경우다. 아시아인은 유능한 사람들이 널리고 깔렸다. 미국내 타인종에 비해 눈에 띄는 전문직에 아시아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조니 용 김 같은, 해군 특수부대 소령이면서, 하버드 의대 졸업한 의사면서, 나사 비행사인 사람들 말이다. 특히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학자나 의사는 아시아인이 많다. 


하지만 그런만큼, 아시아인을 질투하고 혐오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내가 당했던 인종차별은 모두 같은 ‘유색인종’인 흑인, 히스패닉이 저지른 것이었다. (특히 히스패닉은 자신들을 백인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즐겁고 행복했던 한 순간의 소중한 일상이, 내어 말하기도 뭐하게 묘하게 기분 나쁜 인종차별로 망가지는 경우를 나는 가장 두려워 했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곤 했다. 그런 미묘한 인종차별을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 Aggression’이라고 한다. 쪼잔한 공격이라는 말이다. 또한 아시아인 여성이 어딜가나 특히 백인 남자들의 친절한 대접을 받거나 우대를 받는 것도 알고보면 ‘옐로우 피버Yellow Fever’(노란 사람에 대한 열병)인 경우도 적지 않아 영 께름칙한 경우도 많다. 주류사회에서 열등감 있는 백인 남자가 대안으로 아시아인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차라리 모르고 지나가면 속이 편할텐데, 예민한 사람들은 아닌 일로도 혹시 그런가 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일상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미국살이를 포기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 살아보니 미국과 한국 어디가 더 살기좋더냐,’라고 묻는다. ‘둘다 똑같이 돈 있으면 살기 좋고 없음 힘들다.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더라’가 내 답이다. 그래도 미국에는 북한이나,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인재, 안전불감증 사고는 없지 않느냐고. 그렇다. 하지만 총기사고 문제가 있다. 아무데서나 총기 난사 사고가 나는 일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에서 ‘총기난사 대응 방법 교육’을 한다고 해서 가보니, ‘주변에 점점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예의주시할 것,’같은,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조차도 ‘대형 총기난사의 전조’라고 배워야 하다니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가 나면 모두가 일순간 얼은듯이 깜짝 놀래서 주변을 살피곤 한다. 그게 총기사고의 전조일 수도 있다니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세상 살기 좋고 축복받은 천국도 바보같이 지옥으로 만드는 총기 지지자들, 트럼프 지지자들이 있는 게 인간 세상이다. 인간은 미련하지만, 있는 것을 새롭게 보아 감사히 여기는 지혜를 찾는 것도 인간이다.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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