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이냐
분명히 우리가 지난 12월 3일 밤에 경험한 것은 끔찍한 계엄령의 부활이었는데, 요즘은 저 한남동의 시위자들의 괴성과 고함과 함께, 점차 물 차오르듯 넘실넘실대는 각종 신문기사의 망령들 덕분에, 그 계엄령이 사실은 '장난같은 겁주기식 계엄 소동'이었다거나 '구국의 외로운 결단'이었다는 주장이 위험하게 떠오르고 있다. 어제 발표된 모 여론조사 기관의 '윤 대통령 지지율 40%'라는 결과까지 더해져, 박근혜 탄핵 때보다 더 높은 국민의 힘 정당 지지율과 함께 마치 지난 계엄이 별 일 아닌 '통치행위'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트럼프가 선동한 1.6일 미 의회 난입 폭동도 곧 트럼프가 취임하면 관련자들을 사면하겠다고 하니, 그 폭동도 '구국의 결단'으로 칭송받을 앞으로의 4년이 남아있다. 폭동이 구국운동이 되다니, 이건 또 대체 무슨 조화일까?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이후로 더는 절대적 진실이나 가치라는 게 없고 그저 모든 것이 상대적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누구든 목소리 크게, 충분히 오래 주장만 한다면, 그게 얼마나 헛소리이든 간에, 얼마든지 귀 얇은 지지자들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더구나 세계화 시대에 정보가 차고 넘치게 늘어났다. 전세계 어디에서 나왔다고 하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권위의 옷을 입고 횡행해서, '가짜뉴스'를 선별해내기가, 전문 일간지 팩트 체크 팀에서조차 실패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는 그럴싸한 가짜 동영상과 사진, 심지어 복잡한 논문까지 거짓으로 써낼 수 있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젠 전문가도 실패할 수 있는 엄청난 정보 위기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한국 정치인들이 멀쩡하게 표정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에 너무나 경악해서, '정치인의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구글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신뢰할만한 언론인 '악시오스'의 기사에 '정치인의 거짓말이 불법이 아닌 이유'라는 글이 있었다. 미국 대법원 판결로 정치인의 거짓말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의 가치 아래 보호된다는 것이다. 정치의 복잡성과 실제 악의가 있었는지를 판별해야하는 어려움까지 더해져서, 어떤 정치인이 한 말이 의도된 거짓말인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일인지를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법원 다수의견서에서, '거짓에 대한 대비책은 더 많은 진실된 주장'이라고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인, 기득권의 주장만 크게 보도하는 한국 언론지형에서, 이명박 정부때 우후죽순으로 더 많은 뉴라이트 계열 언론사, 정체를 알 수 없는 인터넷 언론사가 늘어난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 이것은 한국 극우세력이 국정원, 기무사 등의 댓글부대와 함께 '인터넷 전사 양성'에 집중하며 생겨난 현상이다. 날치기로 통과된 미디어법에 의해 생겨난 조중동 종편 언론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더 많은 진리 주장'은 커녕, 외려 '더 많은 거짓 주장'이 폭증한 셈이다.
거기에 은퇴해서 외롭고 빈곤한 노인들의 여가시간을 사로잡은 극우 유투버들의 자극적인 거짓주장은 그야말로 불길에 기름 부은 격이 되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세계 초유의 관심사가 되었다. 2030 청년 여성이 주체가 된 한국 민주시민들의 놀라운 비폭력 평화 시위가 계엄령을 막은 일도 세계의 경탄을 불러 일으켰지만, 헌법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며 체포에 불응하는 전직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내란동조세력의 결집도 세계의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고와 최악이 공존하는 사회인 것이다.
어떻게 윤석열은 그토록 짧은 정치경력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대한 세력으로 단단하게 자리잡게 되었는가?
나는 그 원인을 한국의 높은 노인빈곤율과 사고의 빈한함에서 찾는다. 취업이 안되고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여러 대학에서 폐과 위기에 처한 '문사철' 즉, 문학, 사학, 철학이 없어 겪는 위기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최빈국의 한국을 경험하며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구어냈음에도, 노인세대 대부분은 제대로된 복지로 그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높은 노인 자살률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게다가 경제성장의 열매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나타나서, 양극화를 심화했을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인들이란, 탑골공원에서 무료취식해야하는 이들, 늦은 나이까지 폐지를 팔든지 경비일을 하든지 해서 먹고 살아야하는 이들, 그리고 압구정역에서 모피코트에 명품백 들고 지하철 무임승차하는 이들 밖에는 없다. 열심히 죽어라 일했는데 누구는 집 몇 번 잘 사고 팔아 대대로 물릴 부호가 되고 누구는 국민연금도 부어논 게 제대로 없는 빈자가 된 게 현실이다.
한국은 문맹률이 매우 낮지만, 동시에 성인 문해력(literacy)과 독서율이 지극히 떨어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한 해 간 책 한권도 안 읽는 성인 비율이 60%가 넘어가는 나라다. 심각한 사태고 민주주의 위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주로 '읽는 것'은 편향되고 저열한 기사가 가득한 황색 언론에 가까운 조중동 신문 뿐이다.(놀라운 건, 일부 지방의 가판대에 가보면 오로지 저 신문들 밖에 파는 게 없다!) 가진 정보는 얄팍하고 신문을 비교해가며 비판적으로 비평할 능력이 없으니, 당연히 가짜뉴스, 오보, 교묘한 사실과 거짓주장의 배합, 확증편향만 가중시키는 자극적 주장, 음모론, 단순하고 알기 편리한 흑백논리, 선악이분법적 세상관, 그런 것들이 판칠 수 밖에. 거기에 앞서 말한 보상심리와 분노가 겹쳐지면, 드디어 '나치당' 같은 자들이 영구집권할 비옥한 토양이 된다. 결단코 민주주의는 꽃필 수 없다. 개인을 숭배하고 강력한 권력을 추구하는 전체주의가 판을 치게 되어 있다.
이 엄청난 갭을 금광마냥 발견하고 '한국의 트럼프'가 되기로 작심한 자가 바로 내란수괴다. 여기에 한국인의 깊은 종교심을 악용하려고 샤머니즘까지 곁들이게 되었으니 천하무적, 영원불변의 '절대반지'를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그가 되려던 것은 결코 '자유민주주의 대통령'이 아니라 '절대왕정의 정교일치의 왕-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지지자들 입에서 '윤이 곧 대한민국 자체'라는 자백이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을 가스라이팅으로 잘 지질 줄 아는 한국판 '네로'다. 대중선동과 권모술수의 귀재다. 바보로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만만찮은 존재다.
그러면 우리의 자유는, 진실은, 우리의 민주주의는 패할 길 밖에는 없는가.
나는 지난 계엄내란의 와중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는 '이 세상에 어떻게 이러한 악과 고통, 지극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가'에 천착했던 사람이다. 해결책은 정치학 교과서에 있지 않다. 선악, 진실과 거짓, 모순과 역설을 붙잡고 고민하는, '도대체 참 사람됨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데에 생명의 길이 있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이 문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으면,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나는 장관하는 내내 하루하루가 참 행복했다'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으리라. 문학은 공감능력이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을 싸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윤석열이, 한덕수가, 최상목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더라면, 2024년에 계엄령이라든가, 탄핵 반대를 위한 꼼수 같은 건 부리지 않았으리라. 역사를 안다면 그런 짓이 결코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도 없다는 것과, 만대 오욕의 대명사로 남을 것을 알았으리라.
하물며 그들에게 무슨 철학을 바라겠는가. 전여옥이 서재에 가보니 제대로된 책 한 권이 없더라는 유신공주는 티비연애드라마, 성형, 주술에 그토록 빠져있더니만, 이제는 극우유투버와 주술에 빠진 대통령이라니. 그게 다 문사철을 허투루 여긴 우리 사고의 빈한함 탓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우리의 자유를 지키려면, 시위에도 나가야 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시민의 기본자세인 '비판적 사고력'을 갖춰야만, 이 혼란한 시대에 참과 거짓을 분별하며 사람을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모두가 사람답게 살만한 사회'에 살 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