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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2024년이여

by 에반스토니언


나는 매년 말일이 되면,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 한 해를 돌아보는 앨범을 만들어 음악과 함께 한 번 돌려보곤 한다. 그렇게 매년 하나의 앨범이 생겨난다. 나이 먹을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2024년을 새해로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4년이 끝이라니.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지난 한 해의 사진들을 쭈욱 모아서 보니,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변해가는 아이의 얼굴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유치원에 간 아이. 이제는 완전히 아기티를 벗고 완연한 장난꾸러기 유치원생이 되었다. 그 유치원을 알아보고 지원하느라고 얼마나 마음 졸였던지. 육아빠라, 엄마들과 말 한 번 섞기 어려워서, 아이랑 친한 아이를 따라 오래된 유치원에 보내게 되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보람있는 일은 잘 없을 것 같다. 내가 무슨 특별한 일을 안했더라도, 아이가 무탈하게 크도록 돌본 것이 내가 지난 한 해 가장 잘 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진첩을 보면서 온통 아이의 사진만 가득한 것을 보면서 마음 속에 '역시 나는 사라졌구나,'하는 작은 실망감이 있었다.


맛난 것을 먹어도 아이랑 함께, 어디 좋은 데를 가도 아이가 좋아할 수 있는 곳을 가고, 무언가 우리 부부만의 활동이라든가 나 혼자만의 활동은 기록이 거의 없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사라져 버린 2024년이었던 것인가.


서운한 마음으로 지난 일기를 떠들어 봤다. 거기에 '나'가 있었다.


아이가 나온 후 수년을,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아이의 주양육자가 되어야 하는 내 처지를 받아들이느라,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제는 아이랑 있는 시간에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고 안절부절 못해하는 것은 많이 나아졌다. 그렇게 육아와 살림, 한국 귀국이 많이 적응되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2024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가장 잘했고 또 좋아하는 일인 글을 매만지며 살겠다는 결심이 있었다. 글을 읽고 또 읽고 더 읽어서 무지한 머리를 채우고, 생각과 상상을 거듭해서, 마침내 글로 써내는 일, 그리고 끊임없이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자. 비록 그 일이 당장 돈을 벌어다 줄 수는 없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진학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투자해서, 출간을 하고, 수입을 일으켜보자는 계획이 선 한 해였다.


그리해서, 연초부터 도전한 것이 네이버 블로그였고, 서평과 맛집 탐방기 등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반기에 읽은 책이 약 40권이었다. 평소에 연락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내 생활 속에서, 나의 외로움은 글쓰기를 통해서, 인터넷 저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걺으로서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저자들과 대화하고, 글을 쓰면서 미지의 독자들과 또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7월에 벼르고 벼르던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네이버 블로그가 어느 정도 탄탄해졌다 싶을 때였다. 다행히 금방 통과가 되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후반기에는 책은 채 스무 권 못 되게 읽었다. 대신 브런치에 나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올리는 데에 주력해서, 단행본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 글을 남길 수 있었다.


브런치 북으로 출간을 한 뒤, 12회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도 응모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응모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올 해 일단 언제 출간될지 모르는 책 한 권은 써낸 셈이다. 고생많았던 미국 생활을 토해내듯 글로 써내고 나니, 갑자기 진이 쭈욱 빠지면서, 이 다음에는 무얼 쓰지하는 고민과 함께 잠시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반기에 브런치에 내가 쓴 글들이 종종 다음 홈페이지 어딘가에 내걸리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내걸린 글들은 하루 아침에 조회수가 천 명을 넘어섰고, 글 하나는 2만 3천명이 조회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렇게 해서, 2024년이 저무는 지금까지 내 브런치의 방문객은 4만 명 가까이 된다. 구독자는 천천히라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제는 브런치에도 어느 정도 글이 쌓여서 그런지, 하루에도 좋아요 알림이 여러번 오곤 한다.


2024년, 내 나름 작가로서 첫 일년이었다고 생각한다. 육아빠로서의 정체성에만 파묻히지 않고, 어떻게든 가는 시간을 붙잡아 뭐라도 읽고 뭐라도 써보려고 했던, 행복한 일년이었다. 해결하고 성취한 일들도 있지만 일년 내내 붙잡기만 한 고민들도 있다.


지는 한 해를 돌아보고 새 해 소원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에 얹어 비는 사람들의 활력이 부럽다. 2025년 한 해는 좀 더 많은 꿈을 현실로 이루는 한 해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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