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노동 일기를 감상하며
이 책의 작가 이두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이다. 건설노동현장을 배경으로 노동의 단면들을 포착하고, 작가 자신과 타자,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한 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해설 글이 더해져서 작품이 되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한다. 이 말은 그저 일반적인 명제일 뿐, 내가 직업을 선택할 때도 나의 자녀들에게 직업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도 분명 선호를 가르는 기준이 있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있고 각종 SNS와 유튜브를 통해 여러 직업인들의 면면들을 들여다볼 기회는 많다. 하지만 어디서도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삶을 '감상'한 적은 없다. 그저 막일판의 거친 사람들의 모습, 먼지투성이의 작업화와 작업복, 술로 피곤을 달래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그들의 일상에 뭐 그리 감상할 게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책 '뒷모습만 봐도 그의 하루가 보인다'를 감상하다 보면 그동안 잘 살펴보지 못했던 사람살이의 어느 한 구석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두수 작가의 시선은 마치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워진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향한 깊은 만남과 닮아 있다. 자신이 머무는 건설노동현장 속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이 해야 할 위험한 작업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살아냄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포기하지 않기에 희망 가득한 삶을 이야기한다.
큰 해머로 벽을 내칠 때에는 절망도 사치라고 외치며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투박한 난로를 앞에 두고 동료들과 나누는 소소한 인사에서 따뜻함의 본질을 찾고, 각자에게 맡겨진 '내 몫'을 강하게 호소하지만 그것이 하나 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함을 설명한다. 함바집 아줌마의 이를 가득 드러낸 웃음에서 정성의 의미와 감사로의 화답을 이야기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지만 일용직 건설노동자는 먼지를 구덩이 속에서 몸을 쓰며 그들만의 작품을 만든다. 자신의 작업이 괜찮은지 살펴보는 건설노동자의 뒷모습이 엄격하고 치밀해 보이기까지 하니 건설현장의 거친 노동도 예술행위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인다.
이두수 작가는 노동을 통해 절차탁마(切磋琢磨) 중이라고 고백한다. 자르고, 부수고, 쪼고, 갈며 집을 만들 듯 말이다. 고고한 가치는 어디에든 있다. 다만 제자리에서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누구든 절차탁마의 삶을 살 수 있다. 세밀하게 보고, 섬세하게 느끼며, 정성을 다해 임하며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삶은 그의 자리가 어디이든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이두수 작가의 그림일기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