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정체가 폭로될 때...
#에피소드 1. 산타와의 비밀
오래 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6살 딸아이를 둔 회사 선배가 사뭇 진지한 말투로 '고민이 있다' 며 꺼낸 얘기입니다.
고민이 있다지만, 웃음기도 좀 섞인 얼굴이었습니다.
"우리 애한테 산타 할아버지가 뭘 주면 좋겠냐고 물어봐도 안 알려준다. 산타와 자기 둘 만의 비밀이라고..."
그동안엔 아무 선물이나 머리 맡에 놔두면 다음 날 좋아했고, 대화가 통할 때부터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으면 신나서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6살이 된 그 해엔 상황이 달라진 거죠.
자신이 원하는 걸 머리 속에 구체화할 능력이 생겼고,
'비밀'이란 말의 의미를 언어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알게 된 겁니다.
"아무리 물어봐도 비밀이라고 말 안 해준다 참... 뭘 사야 하냐, 미치겠다. 하하하!"
뭘 사줘야 할지 난감함과 딸의 성장에 대한 대견함이 섞인 웃음으로 귀가한 선배,
크리스마스 이브인 다음 날엔 그 웃음기가 많이 사라진 얼굴이었습니다.
여전히 그 딸이 산타와의 비밀을 굳게 지키며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물을 살 시간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딸아이의 비밀을 캐낼 방법이 도무지 없는 상황.
그렇게 그해 12월 24일 저녁, 그 선배는 한숨을 쉬며 퇴근했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만난 선배에게 어떻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끝내 산타와의 비밀을 지켜냈고, 어쩔 수 없이 아이 엄마와 상의한 끝에 예쁜 인형을 정성스레 포장해 아이 침대에 놔뒀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선물을 본 아이는 좋아는 하면서도, 그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얼굴에 일종의 '의심'이 미세하게 감지됐고,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도 살짝 비치더랍니다.
아마 이 아이는 다음 해 크리스마스부터는 원하는 선물을 엄마 아빠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에피소드 2. 산타의 옷
이번엔 제 친구의, 역시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7살을 지나 8살이 돼가던 아들에게 아주 거창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 고 아이에게 하얀 거짓말을 해놓은 뒤에,
밤 9시쯤 완벽한 산타 복장을 한 채 집 안에 몰래 들어간 거죠.
그리고는 거실에서 엄마와 함께 티비를 보고 있는 아이 앞에 '짠~!' 하고 깜짝 등장했습니다.
흰 수염을 덕지덕지 붙이고 모자까지 푹 눌러썼더니, 아이는 아빠인 줄 눈치 채지 못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산타 복장으로 20분 정도 아이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공연 비슷하게 한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는 마냥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탄절인 다음 날 오전.
아들에게 '어제 산타 할아버지 왔었다며? 재밌었어?" 하고 물었더니, 아들은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더랍니다.
그러더니 한 30분 후, 안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아들이 옷장 서랍 속에 숨겨놓은 산타 복장을 손에 들고 나타나더랍니다.
그리고는 웃음을 참으면서, "산타 할아버지가 옷 다 벗어놓고 갔어, 크크! 아빠 가지래, 크크크!"
아마 춤출 때부터 눈치 채지 않았나 싶더랍니다. 그걸 일부러 속아준 아들이 이제 다 컸구나 싶더랍니다.
아이들은 언제쯤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될까?
두 해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런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6살에서 15살 사이 아이들과 부모 등 380여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인데, 아이들은 대부분 8살 무렵 산타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슬픔과 충격, 배신감 등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도리어 안도감이나 행복감을 느낀 경우도 적잖았다고 합니다.
물론 슬픔이나 충격, 배신감도 오래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하고요.
8살이면 감정을 소모할 대상을 어느 정도는 걸러낼 정도로 성장한 나이인가 봅니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는 무얼까요?
가장 많은 경우는 친구의 폭로로 조사됐지만, 스스로 깨닫는 아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앞의 두 사례처럼 어떤 상황이 주는 힌트를 인식해서 산타의 실체를 파악해낸 거죠.
그만큼 세상에 대한 이해도와 인지 능력이 자라났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의 폭로를 듣고 난 후에야 산타의 실체를 알게 된 아이들도 사회적으로 부쩍 성장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정보를 교환할 정도의 사회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떤 경우이든, 아이가 산타의 정체를 파악해 현실을 인식하게 되는 시점은 '내 아이가 아무 이상 없이, 한 인간으로 성장해나가는 단계' 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크리스마스와 산타는 어린 아이들의 부모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수시로 자녀의 키를 재보듯, 자녀의 정신적 성장 단계를 측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