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샴푸를 49만 원 어치 산 이유

한 해를 누구와 보낼 것인가

by 지저귐

연말연시 때마다 저는 '샴푸'가 떠오릅니다.


꽤 오래 전에 제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난 뒤부터입니다.


한 해가 다 저물어가던 어느 해 연말에 이 친구는 회사 후배들을 데리고 거나하게 송년회를 즐겼습니다.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통 큰 선배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후배들을 이끌고 '한턱' 쏘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런데 장소가 일산 어디 쯤인가에 있던 '샴푸'라는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밤새 화끈하게 놀았답니다.


그리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힘차고 멋지게, 카드도 긁었습니다.


새벽녘에야 슬며시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숙취에 시달리던 오전 나절.


가열차게 카드 긁던 순간이 기억 나 속이 더 쓰리고 아파오기 시작할 때쯤,


평소 아빠 휴대폰을 잠금해제해 이것저것 뒤져보길 좋아하던 아이가 이 날도 아빠 옆에서 문자 메시지를 죽 훑어보더랍니다.


그리고는 부엌에 있는 엄마를 향해 이렇게 외치더랍니다.



"엄마! 아빠가 샴푸 39만 원 어치 샀어~~!"


이 친구는연말연시뿐 아니라 평소에도 집에 일찍일찍 들어갔습니다(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렇죠. 연말연시엔 다들 가족과 함께 보내야죠.


샴푸들 사지 말고!


이 집 아들이야말로 진정한 '샴푸의 요정'이었습니다.


아빠를 성실한 남편으로 만든 요정 말이죠.


그런데 요즘도 이렇게 음주가무로 흥청망청하는 연말연시 모임이 많을까요?


누가 조사해본 건 아니지만, 체감상 연말연시가 꽤 차분해진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