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에 던바의 수는?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by 지저귐

운전하다 우연히 들은 노래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선우정아라는 가수의 <그러려니>라는 노래인데, 딱 요 첫 소절 가사가 마음에 꽂히더군요.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세월과 인간 관계의 함수를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요.


실제로 해가 갈수록 만나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모임도 줄어들고요.


연말이 다가오는데 요 몇 년 새 송년 모임이 부쩍 드물어진 느낌도 듭니다.


만나는 사람과 모임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 스스로 '줄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남이 줄어들어가는 친구나 지인은 하나 둘씩 추억, 혹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우리는 몇 명과 살아갈까?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는 세월은 물론 나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도 아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변화해갑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라는 감성의 노랫말은 '던바의 수'라는 무뚝뚝한 학술 용어로 '수치화'할 수 있습니다.


던바의 수?


많은 사람에게 생소한 말이죠.


로빈 던바라는 영국의 인류학자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던바는 개인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간 관계의 범주를 친밀감과 신뢰감의 강도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몇 명씩과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수치로 내놨습니다.


경험이나 감으로만 수를 측정한 건 아닙니다.


던바는 영장류의 뇌 크기와 집단 크기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뒤, 인간 뇌의 신피질 크기를 기반으로 인간에게 해당하는 사회 집단 크기를 추정했습니다.





'던바의 수' 로 명명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이 진정한 친밀감과 신뢰감, 매우 깊은 정서적 유대로 가장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수 5명 이내라고 합니다. 배우자를 포함한 가족이 우선 해당하겠죠. 가족을 빼면 '절친'일텐데, 많아야 한 두명이란 뜻입니다.


두 번째로 '가까운 관계' 를 유지하는 사람의 수는 15명으로 제시됐습니다. 자주 연락하고 조언도 구하고 하는 친한 친구나 친척일 것입니다.


좀 더 폭을 넓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수는 50명 정도로 추려졌습니다. 생일을 챙기거나 모임을 함께 하는 정도의 친근한 관계겠죠.


던바는 여기서 더 범위를 확대해 '의미 있는 관계'도 수를 측정했습니다. 서로 얼굴을 알고 어느 정도 개인사를 공유하는 정도의 관계인데, 몇 명일까요? 약 150명으로 제시됐습니다.


150명? 이 정도면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꽤 많은 수가 아닐까싶습니다.


던바는 인간관계의 범위를 '약한 유대'라는 단계로 더 넓혀 이를 500명으로 어림잡았습니다. 이름과 얼굴을 아는 정도까지 포함한 범위죠.


더 나아가 얼굴은 익숙하지만 사실상 서로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관계, 즉 얼굴만 알아볼 수 있는 관계로 확대하면 그 수는 1,500명까지로 제시됐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1,500명이라는 거죠.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던바의 수를 다시 정리하면,


1단계 : 가장 가까운 관계(진정한 친밀감과 신뢰감, 깊은 정서적 유대감) → 5명

2단계 : 가까운 관계(자주 연락, 조언도 구하는 정도. 친한 친구 등) → 15명

3단계 : 좋은 친구 관계(모임을 함께, 생일 챙기는 사이 등) → 50명

4단계 : 의미 있는 관계(아는 사이, 어느 정도 개인사 공유) → 150명

5단계 : 약한 유대 관계(이름과 얼굴 정도 아는 사이 포함) → 500명

6단계 : 별 의미 없는 관계(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까지 포함) → 1,500명


던바의 수는 이렇게 각 단계에 따른 관계의 수를 말하지만, 때로는 4단계, 즉 '150명'이라는 수 자체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한 평생 살면서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최대한의 사람 수가 150명이고, 이것이 던바의 수라는 말이죠.



AI 시대에 던바의 수는?


던바의 연구결과가 제시된 건 90년대,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입니다.


당시에도 소셜미디어는 있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수천 명과 연결돼 있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정서적 유대 관계는 아주 많아봐야 150명을 넘기 힘들다는 것이 던바 이론의 핵심입니다.


부족 단위나 군대 편제, 기업 조직 등에 150명 안팎의 단위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그러나 90년대보다 한 차원 더 발달한 SNS로 얽히고 설킨 지금 시점에서는 인간관계의 단계나 수치에도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관계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 태블릿 등의 모니터, '네모난 세상'을 통해 이뤄지는 요즘입니다.


특히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사람보다 챗GPT나 구글 Gemini, 뤼튼 같은 AI와 더 많이 소통하는 느낌도 듭니다.


던바의 수가 분류한 관계의 단계는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그리고 사람과 AI로 나눠 다시 연구하고 재측정해야 할 듯합니다.


AI 시대에 던바의 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아이러니하게도 AI에게 믈어봤습니다.


구글 제미나이(Gemini)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더군요.


"AI가 인간관계의 양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질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AI 기술이 관계의 양을 늘릴 수는 있어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의 질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게 AI 스스로의 진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