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억 원짜리 그림의 떡
AI 이미지 Gemini.
2050년의 서울은 숨 막힐 정도로 매끈하고 깨끗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들은 구식이라는 이유로 싹 밀려나고, 그 자리엔 번쩍이는 고층 빌딩들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사람들은 이제 젊어지는 기술을 기적이 아니라, 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듯 가볍게 이야기했다.
거대한 기계 통인 '리턴 캡슐'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노인도 금세 청년이 되었다. 암이나 고치기 힘든 병들도 낡은 옷의 보풀을 떼어내듯 깨끗하게 사라졌다. 거리에는 여든 살의 기억을 가진 스무 살의 얼굴들이 넘쳐났고, 그들에게 죽음은 잠시 기다리면 해결되는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일흔 살 말자에게 그 화려한 세상은 남의 집 이야기였다. 그녀는 축축한 고무장갑 속에서 류마티스로 마디마디가 툭 불거진 자신의 손을 만지며 늘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이 좋아지면 뭐 하노. 돈 없으면 그림의 떡인데….”
말자의 어깨 위에는 챙겨야 할 가족들이 짐처럼 얹혀 있었다. 안방에는 5년째 거동도 못 하고 누워 있는 남편 봉수가 있었다. 말자가 없으면 밥 한 술, 기저귀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건너편 방에는 서른 중반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장 없이 고시원을 들락거리는 아들 태준이 있었다.
그녀에게 다시 젊어지는 비용 1억 원’은 평생 남의 집 설거지를 하고 가족 뒷바라지를 하며 한 번도 손에 쥐어본 적 없는, 꿈속의 숫자였다. 그 돈은 단순히 청춘의 가격이 아니었다. 남편 봉수의 수술비였고, 아들 태준이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어 나갈 밑천이었으며, 가난한 말자가 감히 넘봐서는 안 될 ‘욕심’이었다.
지윤은 싱크대 앞에 선 엄마의 굽은 등을 보았다. 손가락 관절이 휘어 무거운 냄비를 들 때마다 파들 거리는 것이 보였다.
“엄마는 진짜로 하고 싶어? 젊어지는 거? 아빠랑 오빠 생각 말고, 그냥 엄마만 생각했을 때.”
말자는 멈칫했다. 아빠 말고, 오빠 말고. 일흔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고민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말하면 뭐 하니. 다시 젊어지면 예쁜 교복 입고 학교도 가보고 싶고… 대학 캠퍼스도 마음껏 걷고 싶지. 요즘 애들처럼 줄 서서 맛집도 다니고. 무엇보다 웨딩드레스, 그거 한 번 제대로 입어보고 싶네. 네 아빠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시작했잖니.”
말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고무장갑을 꼈다.
“말은 쉽지. 1억이라는데 그걸 내가 어디서 구해. 그 돈이면 네 오빠 전셋값인데. 내 형편에 그런 꿈은 죄다 죄야, 죄.”
주방에는 다시 규칙적인 설거지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때 지윤이 엄마의 젖은 손을 꽉 잡았다. 축축하고 차가운 고무장갑 위로 지윤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 나 실은… 그 돈 마련했어. 이미 신청해 놨으니까 엄마는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돼.”
말자의 손에서 접시가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챙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접시가 산산조각 났다. 그것은 말자를 평생 가두었던 ‘엄마’라는 감옥의 벽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안방에선 남편의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가 터졌고, 건너편 방에선 아들 태준이 부스스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아, 깜짝이야! 엄마, 접시 깼어? 좀 조심 좀 하지. 그거 치울 정신 있으면 내 방 보일러나 좀 봐줘. 추워 죽겠네.”
태준의 짜증 섞인 목소리는 말자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 바닥에 떨어진 파편들 사이에 박혔다. 평소 같으면 "미안하다, 금방 치우마" 하며 허리를 숙였을 말자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지윤이 말자의 젖은 고무장갑 위를 꽉 잡은 손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윤의 서늘한 눈빛이 말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 엄마.'
"태준아, 네가 치워. 엄마 지금 나갈 거야."
지윤의 단호한 목소리에 태준이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윤은 이미 말자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말자는 젖은 고무장갑을 천천히 벗어 싱크대 위에 던져두었다. 축축하고 무거웠던 껍질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지윤은 말자의 어깨에 낡은 외투를 걸쳐주고는 현관으로 이끌었다.
문을 닫고 나오는 복도에서도 안방의 기침 소리와 태준의 투덜거림이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말자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굽은 등을 보았다. 70년의 고단함이 켜켜이 쌓인 저 등을 버리고 오는 길. 말자의 심장은 죄책감과 해방감 사이에서 미친 듯이 뛰었다.
지윤의 차는 소음 하나 없이 매끄러운 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2050년의 서울은 지나치게 깨끗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낡고 허름한 것들은 모두 지워진 도시. 말자는 그 도시의 풍경 속으로 자신이 스며들러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 다 왔어."
차는 강남 한복판, 거대한 유리 결정체처럼 솟아오른 '리턴 센터' 앞에 멈춰 섰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거대한 홀로그램 전광판에는 '다시 찾은 스물, 당신의 두 번째 봄'이라는 문구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말자는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1억 원. 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남편의 수술비와 아들의 전셋값은 영영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었다.
"지윤아... 나 진짜 이래도 되는 걸까. 나만 이렇게 호강하겠다고 가족들 다 내팽개치고..."
말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지윤은 말자의 거친 손마디를 꽉 쥐었다.
"엄마, 이건 호강이 아니라 보상이야. 엄마가 70년 동안 그 사람들한테 준 인생을 이제야 돌려받는 것뿐이야. 나 봐, 엄마. 오늘부터 엄마 이름은 그냥 '이말자'야. 누구 엄마 말고."
지윤의 눈빛에 실린 단호함이 말자의 등을 떠밀었다. 말자는 마른침을 삼키고 차 문을 열었다. 센터 로비로 들어서자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거울처럼 빛났고, 그 위를 걷는 말자의 낡은 신발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인형처럼 매끈한 얼굴로 웃으며 말자를 맞이했다. 1억 원의 결제가 확인되고, 수십 장의 면책 동의서에 서명을 마치는 동안 말자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졌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비싼 배신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작별이었다.
"이말자 님, 시술실로 입장하실게요."
직원의 안내를 따라 육중한 금속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푸른 빛을 내뿜는 캡슐들이 늘어서 있었다. 말자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지윤을 보았다. 지윤은 울음을 참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손을 흔들었다.
말자는 캡슐 속에 몸을 뉘었다. 따뜻하고 진득한 액체가 발끝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70년 동안 말자를 짓눌렀던 류마티스의 통증이, 가슴속 깊이 맺혀 있던 뜨거운 응어리가 그 액체 속으로 녹아내렸다. 의식이 멀어지는 순간, 말자는 생각했다.
‘이제야 새로운 인생 시작이구나.'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