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옥상의 눈물, 지상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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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준우는 꼬박 사흘 동안 비즈니스적인 얘기 말고는 입을 닫았다. 꼭 필요한 대화 외에는 채원과 눈조차 섞지 않는 침묵. 그 적막은 채원에게 채찍보다 아팠다. 그러다 4일째 되던 날, 준우가 채원을 옥상으로 불렀다.
옥상의 찬 바람 속에 선 준우가 무심한 듯, 그러나 묵직한 진심을 꺼내 놓았다.
"3일 동안 가만히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상무님이 왜 강수 씨를 만나고 나서 이름까지 바꿨을지 말입니다."
준우가 먼 산을 보던 시선을 돌려 채원을 힐끗 바라봤다.
"얼마나 젊었을 때 해보고 싶은 게 많았으면 그랬을까, 그동안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딸 지윤 씨가 보기에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채원 씨를, 아니 말자 씨를 조금 더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채원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자신의 본명인 '말자'가 준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억눌러왔던 세월의 둑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준우가 말을 이었다.
"지윤이 입장도 생각해 봤어요. 1억이라는 큰돈까지 써가며 엄마에게 젊음을 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고생만 한 엄마가 젊을 때 못 해본 것들, 지금이라도 마음껏 해보라고... 그 마음 다 이해하니까 그렇게까지 해준 거겠죠."
준우는 담배 대신 차가운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채원을 똑바로 쳐다봤다.
"지윤 씨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강수 씨도 그럴 거고. 그냥... 채원 씨가 행복하기만을 바랄 거예요. 자식들한테 당당해지고 싶어서 택한 그 젊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준우는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 옥상을 내려갔다. 홀로 남은 채원은 난간을 꽉 쥔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지윤이가 쓴 1억의 무게와 준우가 던진 '이해'라는 말이 가슴에 박혀, 채원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비명 같은 오열이 찬 바람에 흩어졌다.
채원이 옥상 위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사이, 지상에서는 지윤과 강수가 만나 대판 싸우고 있었다. 지윤은 당장이라도 강수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따져 물었다.
"오빠, 미쳤어? 대체 왜 엄마를 만난 거야! 왜 엄마를 그렇게 난처하게 만드냐고! 왜 회사까지 찾아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야, 도대체 왜!"
지윤의 절규에 강수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조금 후련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 왜, 그러면 안 돼?"
그 비겁한 변명에 지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이제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서늘한 목소리로 강수를 쏘아붙였다.
"당장 엄마한테 가서 사과해. 오빠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아? 이건 단순히 창피를 준 게 아니야. 엄마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거라고!"
지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고, 강수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멀어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옥상의 울음소리와 지상의 고함소리가 묘하게 겹쳐지던, 잔인하리만큼 시린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