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젊음을 택할 것인가

​제23화: 7년의 침묵, 1억 원의 진심

by 정이


AI 이미지 Gemini

채원은 이제 더 이상 이름 뒤에 숨지 않기로 했다. 옥상을 내려온 그녀는 곧장 지윤과 강수를 오피스텔로 불렀다.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차려졌다. 7년 만에 ‘아는 선배’가 아닌 ‘엄마’로서 마주 앉은자리. 채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뗐다.
​“지윤아. 오늘 회사에서 준우 씨랑 얘기를 하다가... 네가 나를 위해 그 거금을 쓰고 이 집까지 마련해 줬을 때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봤어.”
​채원이 지윤의 손을 가만히 덮었다.
​“지윤아, 사실 처음엔 네가 1억이라는 큰돈을 써서 나에게 젊음을 줬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더라. 한편으론 너한테 짐이 된 것 같아서 그게 너무너무 싫었어. 그런데 네 입장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이제야 알겠더라. 넌 그저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라서, 누구 눈치 보지 말고 살아보라고 기꺼이 내준 응원이었지?”
​채원의 시선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강수에게 머물렀다.
​“강수야. 엄마는 처음에 '이말자'라는 내 이름 그대로 대학교에 갔어. 젊은 애들 틈에서 그 투박한 이름으로 불리며 밤새 공부하고, 그렇게 졸업해서 내 힘으로 취업까지 했단다. 엄마는 다시 얻은 이 젊은 인생을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산 적이 없어.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나는 정말 이말자로, 또 이채원으로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았어. 너희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비록 너한테 엄마라고 못 불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라도 네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강수는 며칠 전 엄마의 회사에서 “네가 우리 엄마냐”며 소리치고 난동을 피웠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엄마가 ‘이말자’라는 이름으로 대학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잠을 쫓으며 공부했을 시간들, 그 간절함이 이제야 가슴에 와닿았다. 강수가 마침내 숟가락을 내려놓고 채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엄마... 미안해. 내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
​강수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일궈낸 인생인 줄도 모르고, 내가 엄마한테 가서... 어떻게 엄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엄마잖아! 하며 소리 지르고... 나 진짜 못난 놈이야. 엄마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거, 그거 다 나야. 미안해, 엄마.”
​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채원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어떤 이름으로 살든 이제 상관없어. 엄마가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어 했는지 정말 몰랐어. 이제는 내가 엄마 인생 지켜줄게. 그날 내가 했던 못된 말들, 제발 다 잊어줘.”
​채원은 아들을 품에 안았고, 지윤도 다가와 두 사람을 껴안았다. 자식이 건넨 1억은 젊음을 되찾아준 ‘뜨거운 선물’이었고, ‘이채원’이라는 이름은 젊었을 때 못다 한 꿈을 이루며 살고 싶었던 자신이 자신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음을, 채원은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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