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써 내려감의 즐거움

만년필에 바치는 글

by 우물 안 개구리




나의 오른손에는 자그마한 언덕이 있다. 옆으로 살짝 튀어나온 세 번째 손가락 첫마디가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공부 잘하는 이의 손 모양이라 한다던데, 아쉽게도 그에 해당하진 못한다. 펜을 오랜 시간 쥐고 사투를 벌인 결과라기보단 그저 쥐어 잡는 힘이 좋았던 탓이다. 그림을 끼적이고, 글씨 쓰는 걸 좋아했던 성향도 무시할 순 없다.


어쩌면 읽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쓰는 걸 좋아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하루 6시간 정도는 거뜬히 써 내려가는 날도 있다. 하얀 종이와 검은 줄 사이의 공백을 메워가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평화로움이 좋다. 특별한 내용이 없어도 괜찮다. 유려한 곡선과 색감이 만들어내는 조화 자체가 즐거울 때도 있으니까.


이런 나에게도 권태기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대학 4년, 8학기 내내 몸뚱이 만한 빈 종이를 45분 동안 앞뒤 꽉꽉 까만 글자로 채워나간다는 것은 곧 잘 써지는 펜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시중에 있는 모든 펜을 써봐야 함을 전제한다. 그래서 학교 앞 문구점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반길 정도가 되면—매상 일부를 어느 정도 책임지고 나면— 다 지겨워지는 거다. 그 펜이 그 펜 같고, 뭘 써도 재미가 없다. 이럴 거면 내가 하나 차려 볼까 마음먹는 찰나, 마법처럼 내게 찾아와 준 게 바로 만년필이었다.


뚜껑을 팽그르르 하고 돌리면 짠-하고 나타나주는 닙의 모양새가 반갑다. 배럴(몸통)을 돌려 닙과 잠깐 이별을 고하게 하면 그 속에는 컨버터가 자리하고 있다. 컨버터 안을 기분에 따라 붉게 혹은 푸르게 채우고 종이 위에서 이리저리 리본 체조를 시키면, 이어지는 곡선과 직선이 퍽 만족스럽다. 브랜드에 따라 어떤 만년필은 좀 더 사각이며 말을 걸고, 또 다른 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내 말을 받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만년필과 함께 한지도 어언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말인즉슨 매일 밤 자기 전,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기장에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물들여온 시간도 그쯤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만의 작은 철칙 아닌 철칙도 생겼다. 잉크로 웬만하면 검은색은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초, 중, 고, 대학까지 지겹게 까만색을 많이 썼으니 이제부터라도 알록달록하게 채우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짐은 올해 1월 딱 하루, 그 한 번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이제껏 도구는 도구일 뿐이라는 게 수단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만년필이 나에게 와준 이후로, 그러한 관점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매번 스포이드로 잉크를 채우는 수고로움, 컨버터 내부 압력과 닙 기울기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글자 굵기, 필압과 파지법에 맞춰 조금씩 마모되어 가는 닙. 이토록 한없이 성가신, 그러나 오직 나에게 맞춤인 필기구를 쓰면서 결과물이 아니라 써 내려가는 과정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새 잉크를 넣었을 때 몽글몽글 올라오는 기대감, 사각거리거나 버터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감촉들이 나를 계속 쓰게 한다.


매일 긴 터널 끝에 걸린 빛을 향해서 나아가는 동안 어둠 속에서 길 잃지 않았던 건, 가는 여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해 준 만년필 덕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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