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나의 유튜브 즐겨찾기에는 우리 딸아이의 유아 때 쇼트 영상이 있다.
생후 8개월쯤 되는 시기다. 포털에 올려놓은지 십수 년이 넘었건만 요즘도 종종 열어 보면서 혼자 웃음 짓곤 한다.
힘겹던 imf시절 우리 딸이 태어났다. 말 그대로 우리도 힘겹던 시절이다. 딸아이의 이 시기 귀여운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놓아야 한다는 지인의 선의가 있었다. 그 지인은 당시는 귀하던 8미리 코닥 캠코더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 딸의 3개월, 8개월, 그리고 24개월 시기에 이르렀을 때 기기를 손수 들고 와 촬영을 독려했다. 거의 30년 전인데 참으로 고마운 지인이다.
그 후 영상기기의 진화로 구형 비디오 테잎은 무용지물이 돼갔다. 아직도 보관되어 있는 그 테잎을 십여 년 전에 어렵게 수소문하여 영상을 cd와 usb에 옮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이 짧은 영상이 유튜브에 까지 올려지게 되었다.
제목은 "초코파이 처음맛본 아기표정"이다. 그렇게 걸음마는 물론 서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던 아기가 이제는 성년이 되고 가정을 이뤘다.
또한 계획을 잘 세워 얼마 전 양가 부모들을 모시고 뜻깊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부모를 건사하며 해외 자유여행을 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대부분 인정하는 바이다. 최근 한 방송 엔터프로에서도 그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자녀가 출연해 나의 눈길을 끈적이 있다. 웬만하면 낳고 길러준 부모님인데 그 정도는 못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 딸아이도 여행 전, 벌써 친한 친구로부터 염려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양가부모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하니 친구는 그 힘든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걱정하더란다.
그럴 만도 했다. 출발 몇 달 전부터
여행계획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먼저 여행 동선계획, 항공권과 숙소계획 그리고 자금계획 쇼핑계획 등이다. 말이 쉽지 본인 한 몸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양가부모와 자신들 포함, 여섯 명이 움직이는 해외여행이다. 패키지도 아닌 자유여행을 순조롭고 실속 있게 만들기 위해 딸부부는 쉼 없이 소통하고 인터넷을 누비며 물밑작업을 한 것 같다.
물론 그 노력의 보람된 효과를 현지에서 여행하는 내내 우리 부모들이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딸부부는 우리의 충실한 가이드가 돼 주었다.
오키나와를 4일 여행하는 동안 매일 숙소를 새롭게 달리하며 부모들의 취향에도 맞추고 현지의 분위기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이 짜였다.
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아름다운 경관 뷰와 시설에 탄성을 질렀고 온전한 가족여행의 진가를 느끼는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젊음과 민첩함이 있는 사위는 랜트카를 능숙하게 운전했다. 우리의 도로체계와 차량구조가 정반대인 타국에서 9인승 토요타 suv를 여행 내내 안전운행 하였다.
탑승자의 입장인 나로서도 여행하는 동안
몇 번이나 현지 교통체계의 당황스러운 순간을 느꼈지만 운전자인 사위는 침착하게 매번 대처했다.
첫날부터 딸부부의 계획표대로 일정은 시작되었다.
해변길을 걷고 쇼핑을 하고 맛집을 찾아가고 아열대의 용암 계곡 등을 탐방했다.
또한 유서 깊은 테마파크의 야외 돌고래쇼가 인상적이었다.
규모도 클뿐더러 쇼의 다양함과 수준 높은 기예가 감동을 주었다.
하늘로 솟구치는 현란한 돌고래의 몸짓을 보는 순간 나는 옆자리의 딸내미를 흘긋 보았다. 쇼 관전에 몰두하는 딸아이 얼굴을 다시한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도 오래전 보았던 돌고래쇼와 오마주한 장면이 떠올라 미소 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두세 살 되었을 때인가 에버랜드 실내 돌고래쇼장에 갔을 때이다.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관람석 맨 앞줄에 자리했다.
곧 돌고래가 출연해 한동안 유영을 하였다. 잠시 후 조련사의 신호가 있자 갑자기
성인 키만한 검은빛의 돌고래가 우리 바로 앞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애기적 딸아이는 깜짝 놀라서 아빠품에 안겨들던 그 모습이 순간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곧 현실을 자각하니 갑자기 세월이란 명제의 상념에 젖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러던 딸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제는 부모를 케어하며 이곳에 와있다.
저녁에는 수영장이 해안의 수면에 닿을듯이 설계된 풀빌라 숙소에서 수영을 즐겼고 다음날 눈부신 아침을 맞았다.
여행 중에는 돌발적으로 계획이 날씨 등에 따라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그때마다 타국인데도 인터넷 앱등 정보검색을 통한 자녀들의 신속한 대처는 여행 중에 느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은 국내든 해외든 정보검색을 통하여
먹거리와 쇼핑 숍, 명소 등을 찾아다닌다. 장소를 물색하고 가격을 비교하며 아웃렛과 면세점을 찾았고 쇼핑에서는 할인정보 등을 잘도 찾아냈다.
우리 부모들은 그저 맘 편하게 따라다니며 여행을 즐길 뿐이다.
과연 딸부부를 비롯한 요즘 젊은 층은 스마트 폰의 세대다. 또한 온라인 세상과 메타인지의 신세계를 살아가는 세대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모들은 분명한 무형의 소득을 얻었다. 이제는 장년층이라는 쇠락의 허전함에 앞서 든든한 실체를 발견했다. 우리 자녀들의 대견함과 믿음직한 성년의 모습이 바로 우리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