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벌써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첫 등장 당시에는 아무나 탈 수 없는 소위 ‘회장님 차’였으나, 지금은 5년 연속 판매 1위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성공의 상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그랜저’, 오늘은 이 장엄하고 웅장한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1986년, 현대자동차는 1세대 그랜저를 출시합니다. 1세대 그랜저는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50대 고객을 겨냥하기 위해, 동시대 차량 중 가장 우수한 성능과 기능을 갖추었습니다.
실제로 1세대 그랜저는 국내 최초로 적용되었거나 동급 유일인 기술을 무려 9가지나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문 지면 광고에 게재된 내용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운전자 부주의 경고 전자식 자동제어 장치
▣ 컴퓨터 조절 에어컨 시스템
▣ 동급 유일 풀 도어
▣ 동급 유일 풀 플랫 시트 & 루즈 시트
▣ 국내 유일 4륜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 국내 유일 슈퍼 밸런스 서스펜션
▣ 국내 유일 텔레스코픽 및 팝업 틸트 스티어링
▣ 국내 최초 오토라이트 컨트롤
▣ 국내 최대 배기량 2.4L 엔진 탑재
즉, 1세대 그랜저는 각종 신기술을 대거 채택한 최고급 세단이었습니다. 편의성과 안전성을 위한 사양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주행성능까지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최고급 세단답게, 1세대 그랜저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했습니다. 87년식 1세대 그랜저의 최상급 모델인 ‘그랜저 2.4’의 출고가는 2,550만 원으로, 당시 한 그릇 가격이 평균 616원이었던 짜장면을 약 40,000그릇이나 먹을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
이처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1세대 그랜저는 굉장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단종 직전까지 무려 92,571대가 판매되었고, 지금도 ‘각그랜저’라는 애칭으로 올드카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열심히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1세대 그랜저의 명성은 1992년 등장한 2세대 그랜저(뉴 그랜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현대적인 디자인과 넓을 실내 공간을 갖춘 2세대 그랜저는 1세대 그랜저의 2배에 가까운 164,927대가 판매되었습니다.
2세대 그랜저 역시 다양한 첨단 기능을 대거 탑재했습니다. 대표적인 기능은 아래와 같습니다.
▣ 국내 최초 에어백 장착
▣ 국내 최초 TCS 시스템 장착
▣ 액티브 ECS
▣ ESP(現 MDPS)
이외에도 ‘냉장고’, ‘무선 키’, 전동 시트’ 등의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으며, 2열 도어를 열면 탑승하기 쉽도록 좌석이 뒤로 밀리는 ‘이지 엑세스’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2세대 그랜저가 등장한 시기가 90년대 초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랜저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2세대 그랜저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그랜저=일자형 리어램프’라는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3세대 그랜저(XG)를 제외하면, 이후 등장한 그랜저는 모두 일자형 리어 램프를 사용하며 아이덴티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1998년, 3세대 그랜저(XG)가 출시되면서 그랜저는 대중에게 한걸음 가까워졌습니다. 3천만 원을 호가하던 가격은 2천만 원대로 저렴해졌고, 중년층 고객을 겨냥하던 마케팅도 한 층 젊어졌습니다. 이때부터 그랜저는 국민 세단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중후함을 중시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3세대 그랜저는 ‘하드톱 스타일 프레임리스 도어’와 ‘플래그 타입 사이드미러’를 채택하였습니다. 또한 역대 그랜저 중 유일하게 일자형 리어램프가 아닌 다른 디자인의 리어램프가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랜저의 명성까지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3세대 그랜저는 이전 세대의 명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아래와 같은 첨단 기능을 적용하였습니다.
▣ 국내 최초 첨단 자동변속기 H-MATIC
▣ 국내 최초 HID 헤드 램프
▣ 세이프티 파워 윈도우
▣ ECS(전자식 서스펜션)
게다가 3세대 그랜저는 국내 최초로 <미국 NCAP 안전도 테스트>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별 5개를 받아 안전성을 입증하였으며, 역대 그랜저 중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가치를 크게 드높였습니다.
이후 2005년, 중장년층의 상징 ‘4세대 그랜저(TG)’가 등장합니다. ‘견고한 안락함’이라는 콘셉트로 다듬어진 4세대 그랜저는 한 단계 진화한 세련미와 역동성으로 국내외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아울러 그랜저의 아이덴티티인 일자형 테일램프도 이때 부활했습니다.
4세대 그랜저는 ‘EPS’나 ‘ABS’ 등의 첨단 사양을 기본 적용했습니다. 또한 DVD와 내비게이션 옵션을 갖춰, 인포테인먼트적인 면을 강화하였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세계 10대 엔진>으로 선정되며 지금까지도 호평이 자자한 ‘3.3L 람다 엔진’을 최초로 장착해 탁월한 주행을 선보였습니다.
4세대 그랜저는 본격적인 대형 세단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4세대 그랜저는 출시 당시 출고까지 3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고, 수입 브랜드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405,545대가 판매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 수준의 품질과 상품 경쟁력을 갖춘 럭셔리 대형 세단 개발’이라는 현대자동차의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것입니다.
2011년, 5세대 그랜저(HG)가 공개됩니다. ‘다섯 번째이자 첫 번째 그랜저’라는 광고 문구에서 알 수 있듯, 5세대 그랜저는 이전 세대의 헤리티지를 계승함과 동시에 완전히 다른 새로움을 지향했습니다.
특히 5세대 그랜저는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적용되어 카리스마 넘치는 날렵한 이미지를 자랑했습니다. 덕분에 그랜저에 대한 3040세대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고, 사전계약 첫날 7천 명가량이 몰리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편의·안전 사양 또한 놀라운 혁신을 보여주었습니다.
5세대 그랜저는 국내 최초로 차간 거리 조정이 가능한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를 탑재했고, 평행 주차를 돕는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SPAS)’까지 도입했습니다.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의 대중화를 이끈 모델이 5세대 그랜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밖에 5세대 그랜저는 역대 그랜저 중 최초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하며, 친환경에 힘쓰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혁신은 515,142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랜저의 인기는 6세대 그랜저(IG)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과감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으며 데뷔한 6세대 그랜저는 사전계약 시작 하루 만에 1분에 28대 계약 건수를 올리는 진기록을 세우며 진정한 ‘국민 세단’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특히 6세대 그랜저의 리어램프는 역대 그랜저 디자인 중 최고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일자형 리어램프의 아이덴티티는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얇고 우아한 라인을 더해, 볼륨감 넘치는 세련미를 구현했기 때문입니다.
6세대 그랜저의 디자인은 2019년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욱 완벽하게 다듬어졌습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 범퍼가 하나로 디자인된 더 뉴 그랜저의 전면부는 역대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없었던 혁신적인 결과물로, 전 세계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그랜저를 찾는 고객의 연령층 역시 젊어졌습니다. 더 뉴 그랜저 사전계약 당시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가솔린 모델을 구입한 30~40대 고객의 비율이 48%로 50대 이상 고객의 비율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20대 고객도 4%나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그랜저가 온 국민이 선호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단’이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5년을 거치며, 그랜저는 여러 고객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단일 브랜드로 30년 넘게 판매되는 차종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이제 그랜저는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현대자동차의 유산, 즉 헤리티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랜저의 헤리티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 출시될 새로운 그랜저들은 어떤 혁신을 불러올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