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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정말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 있구나"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⑨

  햇살을 생각하면 ‘보드게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위티 사무실에서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릴 때 혹은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났을 때 햇살은 후다닥 서랍에서 보드게임을 꺼내와 입가에 웃음을 단 채 “우리, 이거 할래요?” 묻곤 했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내내 장난스럽게 웃었다. 혼자 있을 때의 햇살은 마냥 진지하고 조용해 보였는데, 위티의 다른 활동가들과 어울릴 때의 모습은 달랐다. 그걸 보면서 나는 위티에서 맺는 관계들이 햇살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콘돔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햇살.
[사진] 햇살이 등을 보인 채 서서 전시회장의 흰 벽에 인화된 사진 여러 장을 붙이고 있다. [사진 끝]

콘돔전시회: 위티와 자색고구미 팀에서 함께 주최한 예술 전시회. 전시의 풀 네임은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전시회’이다. 콘돔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 후기 보러 가기



1. “외롭지 않다는 게 제일 좋았죠.”


도현: 위티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햇살: 제가 학교에서 개인 프로젝트로 페미니즘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이 주제에 너무 꽂혀서, 활활 타오르듯이 책 읽고 기사 읽고 학교에서 설문조사도 했어요. 처음에는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체득하고 알아가는 과정만으로도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와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학교에는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나 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죠.

  근데 결정적인 계기라고 하면... 학교 남자 기숙사에서 남자애들이 여학생들에 대한 ‘몸평’과 ‘얼평’을 했다는 얘기를 제가 듣게 됐어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에 SNS로 페미니즘 단체나 모임을 엄청 많이 팔로우했었는데, 그때 우연히 (위티의 전신인)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이하 ‘청페모’)을 알게 됐어요. 다른 여성단체들은 나이 제한이 있거나 활동 내용이 되게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청페모는 그에 비해 접근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함께하게 됐죠.

  그렇게 청페모에 성큼 발을 들인 햇살이 처음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는 ‘소녀, 소녀를 말하다’ . 연약하고 순진한 존재, 누군가의 첫사랑이나 국민여동생 등의 이미지로 대상화되어 온 여성 청소년들이 직접 기자가 되어 펜을 쥐고 자기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들의, 소녀들에 의한, 소녀들에 대한 기사 열 편이 차곡차곡 쌓였다. (기사 보러 가기) 그 속에서 햇살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소녀, 소녀를 말하다’: 청페모에서 진행했던 청소년 페미니즘 기자단 사업. 이하 ‘소소말’.


‘소녀, 소녀를 말하다’ 홍보 포스터.
[그림] 노란 컬러의 격자무늬 바탕이 있다. 그 위에 학교, 연필, 종이 등 청소년 페미니즘 기자단을 상징하는 다양한 아이콘이 배치되어 있다. 포스터 중앙에는 노란 계열의 색으로 프로젝트 제목인 '소녀, 소녀를 말하다'가 크게 적혀 있다. 그 밑에는 파란색 글씨로 세부 사항들이 작게 적혀 있다. [그림 끝]


도현: 소소말 참여자는 몇 명 정도 되었나요?

햇살: 엄청 많았어요. 20명 정도였던 것 같아요.


도현: 그렇게 많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겠네요.

햇살: 네, 그래서 소속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학교 안에서도 그렇지만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잖아요. 페미니즘에 대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도 흔치 않고요. 그래서 저는 그냥 그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어요. 내가 말을 해도 괜찮고, 내 언어를 검열하지 않아도 괜찮고, 잘 모르는 것이 있더라도 받아주는 공간. 외롭지 않다는 게 제일 좋았죠.


[사진] 청페모 활동가들이 소소말 기사집을 들고 다 함께 모여있다. 기사집은 두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이며, 표지는 소소말 홍보 포스터와 똑같다. 활동가들의 뒤쪽에 있는 벽은 가랜드와 꼬마전구 등으로 꾸며져 있고, ‘청페모의 날’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사진 끝]



2. “학교 밖에서 저의 소속감을 찾게 됐으니까요.”


도현: ‘소소말’ 프로젝트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019년 여름에 위티가 창립됐죠?

햇살: 맞아요. 그리고 제가 위티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게 됐어요.

도현: 프로젝트 참여자에서 바로 상근자가 되다니,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상근을 하기로 한 이유는 뭐였어요?

햇살: 제가 당시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와 안 맞아서 진짜 자퇴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자퇴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런 점 때문에 불안했어요. 근데 위티 창립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상근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때는 당장 학교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상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대단한 결심 같은 건 없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죠. 학교 밖에서 저의 소속감을 찾게 됐으니까요. 제가 위티 활동을 안 했다면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지 잘 상상이 안 가거든요. 얼마나 힘들고 불안하게 보냈을지.

도현: 당시에 상근을 한 사람이 햇살, 지혜, 그리고 유경이죠. 업무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햇살: 유경은 조직국을 맡아서 회원조직을 만나러 다니고, 지혜는 말하거나 인터뷰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는데, 그래서 내가 가장 편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어요.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사무적인 일을 주로 했죠. 당시 위티 사무국의 규모가 진짜 작았어요. 지금은 여러 부서로 나뉘어 있지만, 그때는 정말 세 명이 모든 걸 했어요. 누구는 홍보국이랑 조직국을 둘 다 맡고,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동시에 집행위원회도 준비하고… 약간 이런 식으로 했단 말이에요. (웃음)


도현: 햇살이 보시기에 지금의 조직구조는 어떤 것 같아요?

햇살: 지금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사무처, 홍보국 등등 각자의 역량이나 욕구에 따라 일을 분배할 수 있는 체계가 좀 생겼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 더 중요하고, 어떤 일이 덜 중요하다, 이런 생각들이 좀 해소가 됐다고 생각해요.

도현: 상근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뭔가요?

햇살: 극적인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당장 내일이 행사인데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고, 나는 이걸 책임지고 정리해야 하는데 시간은 촉박하고, 회의하느라 막차 시간이 다 돼서 차는 끊길 것 같고... 그렇게 불안한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웃기는 추억으로 남아 있죠. (웃음)

  그리고 동료들과 놀았던 시간도 기억에 남아요. 회의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것보다는 그 이후에 같이 밥을 먹고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았어요. 전 솔직히 막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기억은 전혀 없거든요. (활동을 시작한 후 시간이 좀 지나고도) 여전히 사람 만나는 게 제일 큰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 위티 활동가들이 넓은 타원형 책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부분은 손뼉을 치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 끝]


도현: 위티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햇살: 제가 엄청 예전에 학교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을 위티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저는 상근을 하고, 그 친구는 학교에서 회원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되게 오랜 시간 동안을 안 보고 살았는데 이렇게 (위티를 매개로) 연결되고 공유되는 것이 있구나, 느꼈어요. 그리고 위티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잖아요. 대학교 졸업생이나 제도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나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도현: 공감해요. 그런데 인터뷰 초반에 ‘위티에서 소속감을 느꼈다’고 말씀하셨는데, 보통 소속감이라는 건 '나와 저 사람이 같구나' 하는 생각에서 오잖아요. 근데 위티 활동가들 삶의 배경이 천차만별이라는 걸 실감한 후에도 소속감이 강화되었나요? 아니면 달라도 공존하는 법을 배운 걸까요? 한마디로, 위티 내의 다양성이 햇살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요.

햇살: 위티 안의 다양한 정체성들을 보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고, 나와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고... 그런 것들을 보면서 되게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가능성으로 비치기도 했고요.


도현: 햇살은 청소년 시기부터 위티에서 활동하다가 중간에 비청소년이 되었잖아요. 그 변화는 어떻게 느껴졌나요? 혹시 동료들과 관계 맺는 데 있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햇살: 제가 위티에서 청소년으로서 활동을 할 때 비청소년 동료들이 해 줬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 그 동료는 자기가 비청소년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되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어요.

  본인의 권력을 인지하지 못한다거나 다른 누군가가 말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진 않은지 조심스럽다고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왜 그런 고민을 해?' 이런 마음이었어요. (웃음) 물론 그런 고민을 나눠준다는 게 고맙기는 했죠. 나와의 관계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고민하고 있는지 느껴졌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그 비청소년 동료의 마음에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주변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내 위치나 권력을 정말 잘 확인하고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3. “저만의 매체를 찾고 싶어요.”


도현: 그렇게 활동을 하시다가 2021년에는 상근을 그만두셨죠. 대신 ‘집행위원회’라는, 2주에 한 번꼴로 만나는 모임을 준비하고 이끄는 (비상근) 일을 맡으셨고요. 이렇게 역할을 바꾼 이유가 있나요?

햇살: 단체 차원의 이유부터 말하자면, 당시에 위티가 상근활동가에게 줄 수 있는 돈이 부족해졌어요. 그래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활동해야 할지 다 함께 고민하며 조직구조를 바꾸던 시기였어요. 저의 경우에는, 너무 오래 위티에 있다 보니까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했고… 불안함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21살이지만 작년은 20살이 되는 해였단 말이에요. 뭔가 이 활동을 내가 계속하면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고, 솔직히 대학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그래서 상근 말고 집행위원회에서 좀 더 느슨하게 활동하게 되었죠.

도현: 그러다가 2022년부터는 활동을 아예 쉬고 계시죠?

햇살: 네, 맞아요.

[사진] 등산로에 멈춰서서 핸드폰으로 풍경 사진을 찍고 있는 햇살의 뒷모습. [사진 끝]


도현: 활동을 떠나고 나서의 일상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위티 활동을 쉬게 되면서 햇살 님의 관점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스스로에 대한, 위티에 대한, 또는 사회에 대한 관점이요.

햇살: 위티 안에 있을 때는 주류의 삶을 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떨어져 있으니까 되게 불안하더라고요. 매일 새로운 사건이나 이슈가 터지는데, 그런 걸 위티 밖에서 지켜보면서 너무 헷갈리고 청소년 페미니즘적인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많았어요. 단체 안에 있을 때는 어떤 이슈에 대해 동료들과 계속 논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논평을 작성하는데, 위티를 나오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아예 없으니까 중심을 잡는 게 좀 어려웠어요. 물론 그럴 때 위티의 글이나 논평을 보기도 하고 그랬죠.

도현: 지금 특히 관심이 있는 이슈가 있을까요?

햇살: 늘 그렇듯이 지금도 페미니즘 전반의 이슈에 관심이 있죠. 근데 요즘은 좀 저의 '매체'를 찾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고, 그것을 통해서 페미니즘과 함께하고 싶은 거에요.

도현: 방금 말씀하신 '매체'라는 건 글쓰기, 음악 이런 걸까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창구'로서의 매체?

햇살: 맞아요, 맞아요.


도현: 햇살 님은 앞으로 활동을 이어 나간다면 어떤 형태로 하게 될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햇살: 저의 현재 포지션은 위티를 팔로우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쪽인 것 같아요. 작년에 좀 쉬는 타임을 가지면서 그렇게 됐죠. 사실 저도 활동을 본업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알 수 없지만, 저의 매체와 연결 지어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3년 넘게 위티에서 일해 온 햇살에게, 활동이 빠진 삶은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삶의 전환기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감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친밀감과 소속감을 활동의 동력으로 삼고 다양한 동료들에게서 배움을 얻던 햇살은 그 부재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꼈을 것이다. 한 차례의 흔들거림을 버텨낸 후 햇살은 대학에 진학했고, 페미니즘을 담아낼 자신만의 매체를 찾아다니고 있다.

  햇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활동 이후의 삶’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활동을 그만둔 사람들과 위티 사이에 어떤 끈이 유지되면 좋을까? 활동 당시에 쌓은 끈끈한 관계들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전·현 활동가들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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