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이름

월급과 생활비의 온도차

by 똥강아지

유로에 익숙해지면, 10유로가 10,000원처럼 느껴진다. 사실 계산해 보자면 숫자 앞에 환율이 붙고, 가격표에 1.5배를 해야하고 가끔 부가세 10%가 추가로 붙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의 나는 월급이라는 단어에 익숙했다. 통장으로 들어오고, 세금이 빠지고, 적금이 묶이고, 보험 나가고 남은 돈으로 삶을 설계했다. 남편도 나도 각자 벌어서 각자 책임지는 기분이 있었다. 마치 경쟁하는 직장동료처럼 치열했던 시간이였다. 같은 집이었지만 두 개의 엔진이 달린 배처럼, 소음은 컸어도 속도는 시원했다.


여기서 돈의 이름이 바뀌었다. 월급 대신 생활비. 같은 숫자여도 온도가 다르다. 생활비는 손으로 만지면 금방 식는 것 같다. 밥, 교통, 보험, 방과 후 수업, 여행, 속옷... 존재감은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살아내기’의 목록을 지나가면 딱히 남은 게 없는 날이 있다. 남편은 내가 답답해 할까봐 내가 받던 월급만큼 월급보다 조금 더 생활비를 입금해주곤 했다. 정신없이 한달을 살아내면 빠듯하게 아껴썼다고 생각해도 마음 한켠이 묵직해진다. 의식의 흐름대로 시간에 쫓기며 소비하던 한국의 습관이 남아있지 않나. 아무도 눈치주지 않는데 혼자 혼나는 아이처럼 시무룩해진다. 나는 지금 벌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듯, 돈을 쓰기만 한다. 영수증이 길어질수록 내 말수가 줄어든다. 나는 왜 이 단어 앞에서 작아지는가.


사실, 돈 이야기는 일부러 많이 하지 않았다. ‘지금을 눈물 나게 견디면 아이는 크고, 미래는 기다릴 것’이라 믿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계산 대신 버티기를 골랐고, 숫자 대신 책임을 껴안았다. 그런데 잠시 멈춘 지금, 그동안 보내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빈 시간들을 타고 들어왔다. 통장 잔액보다 마음의 잔고가 먼저 출렁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예전처럼 전적으로 지금 이 시간을 희생하진 않으리라. 미래만을 위해 오늘을 다 비우지 않으리라.


한국에선 재테크, 대출, 학원비 같은 단어들이 나를 밀었다. ‘다음 달’과 ‘내년’이 항상 목표지점에 있었고 모든 불안을 에너지 삼아 열심히 일을 했다. 여기서는 한 발 물러나 있다. 아이의 학원은 줄었고, 대출은 한국에 묶여 있고, 통장은 얇아졌지만 머리는 잠잠하다. 대신 다른 질문이 자란다. 아이의 나이는 내 경력보다 더 빨리 자란다. 지금은 괜찮아도, 내년·내후년은? 남편의 주재 기간은 4–5년, 나의 휴직 가능 기간은 3년. 우리의 시곗바늘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어느 쪽에 맞춰야 덜 후회할까. 사춘기때도 길게 하지 않았던 근원적 질문'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니 마음은 복잡해지고, 저녁의 계산은 길어진다.


이럴땐 주변을 두리번거려본다. 대체로 두 부류로 보인다. '한국에서 사면(오면) 얼만데'를 슬로건으로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소비를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여행, 가구, 가방, 근사한 식사. 취향이 반영된 인테리어와 소품들. 다른쪽은 알뜰살뜰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주로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고학년 가족들) 입시는 어느나라에서나 치열하고 비싸다. 중고 앱을 상시로 켜두고, 장보기·전기세를 엑셀로 다독이며, 목돈을 조용히 모아 가는 집들.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 각자의 계절과 사정이 있다. 문제는 우리 집의 온도를 내가 설명할 수 있는가다.


남편과는 소리 낮은 회의를 한다. 큰 목표는 줄이고, 작은 합의만 만든다. 생활비는 이만큼, 여행예산은 계절마다 한 번, 이후 예산은 분기마다 점검. 숫자 뒤에 장면을 붙인다. 여름의 기억은 남부로 떠난 2박 3일, 이후의 예산은 내가 다시 시작할 공부 등록비. 돈을 빼내는 대신 장면을 넣는다고 생각하면, 합의가 조금 쉬워진다. 그 장면을 위해 오늘 커피를 한 잔 덜 마셔도 마음이 덜 비어 보인다.


때때로 통장 화면을 오래 본다. 한국에서 달리던 기억이 깜박이고, 지금의 속도가 초조하다. 그럴 때는 계산을 멈추고 집을 한 바퀴 돈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는가? 전혀..절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은 이미 들어와 있다. 지겨울만큼 보내는 아이와의 시간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음식, 주변 사람들과의 온기, 내 적성에 대해 고민할 시간. 나머지는 우리가 정하는 속도로 채워질 것이다. 돈의 크기보다 돈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가끔은 ‘여기에서만 가능한 소비’가 우리를 구한다. 국경을 하나 넘어 봄 바람을 마시고, 플리마켓에서 득템한 오래된 램프 하나로 밤의 빛을 바꾸고, 아이와 박물관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끝까지 들어 본다. 계산기보다 표정이 남는 날. 그 표정이 쌓여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로 바꾼다. 반대로, 모아야 하는 계절이 오면 우리는 속도를 줄인다. 새것 대신 중고, 외식 대신 집밥, 새것 대신 잘 고른 중고. 절약은 갑자기 큰돈을 만드는 재주가 아니라, 마음이 허무해지지 않게 줄이는 기술이라는 걸 이제 안다.


나는 여전히 돈 앞에서 작아지고, 때로는 과하게 굳는다. 그래도 달라진 점 하나. 돈을 두려움의 언어로만 보지 않는다. 오늘을 꾸리는 힘, 기억을 남기는 선택, 이후를 가볍게 하는 준비—이 세 가지 언어로 나눠 듣는다. 그리고 가끔은 조용히 항목을 바꾼다. “이번 달의 기억 예산은 아이 생일과 내 생일로.” “이후 예산은 가을 학기 등록비로.” 돈의 이름을 내가 지으면, 돈이 나를 덜 흔든다.


주재 기간과 휴직 기간의 어긋남이 마음을 건드릴 때, 나는 우리 둘의 과거를 떠올린다. 한국에서 밤을 새우며 달리던 그 시간들. 그 엔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여백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주 죄책감으로 돌지 말자. 우리는 같은 배에 타 있고, 지금은 한 엔진이 잠시 쉬는 중이다. 배는 여전히 앞으로 간다. 속도는 달라졌지만, 방향은 같다.


언젠가 돌아가면 다시 월급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겠지. 그때 나는 알 것이다. 월급이 생활비로 바뀌던 이 시간 동안, 나는 돈을 조금 다르게 배우고 있었다는 걸. 돈은 숫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고르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타국에서 씩씩하게 일해나가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세상에 나를 증명하고 싶었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가장 독립적일 때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삶은 구호와 다르게, 무게와 부피가 다른 가치들이 뒤엉켜 매 순간의 선택을 어렵게 했다. 멈춰 보니 비로소 보인다. 내가 정말 지키고 싶은 건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존중, 남의 시선보다 내 자존감, 돈의 크기보다 돈이 만드는 리듬, 그리고 아이의 안전과 가족의 건강이다. 아마 이런 걸 가치관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앞으로의 선택은 더 단순해질 것이다. 내 가치에 가까워지는가, 멀어지는가. 그 질문 하나면, 당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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