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아름다운 집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아이가 어른에게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와 같은 식으로 말해봤자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해야 “얼마나 아름다울까!”라고 감탄할 것이다. 기존의 시장은 이제 데이터가 풍부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 시장 변화에서의 핵심적인 차이는 유통되는 정보의 역할과 데이터가 의사 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풍부한 시장에서는 더이상 선호도를 가격으로 압축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데이터가 있다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의 격차가 가치를 만들게 되고, 그것이 곧 돈의 흐름이 될 것이다.
Data driven marketing이라는 서적이 무려 2010년에 존재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2017년을 기점으로 인터넷의 디지털 흔적은 마케터에게 중요한 고객 분석 소스임을 인지된 듯 하다. 과거와 달리 이젠 구매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객의 흔적이 남으니 우린 그것을 분석하면 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흔적을 더 면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더할 수도 있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필두로 마케팅에서 데이터의 영역을 점점 더 커져갔고 마케터가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도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을 보자. 각종 센서가 우리 주변에 즐비하며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스마트 디바이스로 우린 더 많은 충전단자가 필요한 인류가 되었다. 이것이 데이터의 지층을 형성하고, 데이터 광산이 생길 것이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린 꽤 많은 변화를 체험했다. 재택 근무는 꼴보기 싫은 상사를 안보고도 일을 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회사는 직원에 대한 불신으로 여러 감시 장치를 만들고, 유능한 실력자들의 그 감시를 깨뜨리는 창과 방패의 싸움도 흥미로웠다. 대면으로 진행되던 보고와 결재는 온라인 상에서 모두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기록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새로운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김철수 사원이 올린 기안이 아무런 수정 없이 대표에게 결재되는데 15일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중간 결재자가 꼭 필요할까? 과거에 이루어지는 결재는 상사의 직관이 절대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편향이 듬뿍 묻은 경험을 근거로 되는 사업과 안되는 사업을 판가름했다. 조금 더 디테일이 있다면 이 기안이 우리 부장님, 우리 이사님, 우리 사장님이 만족해하실 것인지를 고려하기도 했다. 한가지 가정을 해보자. A기안과 B기안에 대한 결과값이 데이터에 기반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간결재자는 과연 필요할까? 기업도 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화두를 던질 때 스타트업 대표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아직 저희는 그럴 수준이 아니라거나, 혹은 축적되는 데이터가 미미하다며 손사레를 친다. 갑자기 영업사원이 된 기분이다. 뭘 팔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자신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객관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특히나 요즘처럼 알고리즘에 의해 편향이 확증 되는 이런 시대에 말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기준을 가지고 수정을 할 의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업의 KPI도 없이 운영하는 것은 요행만으로 기업이 잘되길 바라는 것 아닌가. 데이터는 그러한 지점에서 스타트업에게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묵묵히 동의하지 않을 당신을 위해 한가지를 더 보탠다. 소비자의 여정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진다. 이는 기술발전이 정보획득의 용이함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여정에 공백이 생기면 구매가 어려워지므로 기업들의 마케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촘촘해졌다. 소비자 역시 변화했다. 주말에 아들을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 줄 때는 ‘부모 모드’지만 평일 스타트업 대표들과 진중한 멘토링을 할 땐 ‘업무 모드'이다. 부모 모드일땐 지루한 기다림을 줄여줄 라떼 할인이 가장 큰 니즈라면 업무 모드일땐 근처 술집 할인 쿠폰이 더 큰 니즈일 수 있다. (지인들은 알겠지만 난 커피와 술을 안한지 오래되었다. 다만 아닌디야 고즈의 TAP을 인용한 것이다.)
어제 문득 3년째 묵힌 교안 하나를 발견했다. “스타트업을 위한 데이터 전략”이라는 파일명에는 묵은 먼지가 쌓인 듯 보였다. 공공기관의 컨설턴트가 던지는 이런 주제는 매력적이지 않은가보다. 내가 주로 요청받는 교육은 정부지원사업의 소개나 사업계획서 작성이 대부분이었다. 때론 교육 말미에 이루어지는 질의응답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기관의 지원사업에 통과할 수 있는지, 남들은 모르지만 은밀히 꿀팁을 알려주길 기다리는 시선이 즐비했다. 과거 빅데이터 기술연구회 총괄을 맡을 때도 이런 반응이었다. 비전공자가 총괄을 맡았고 결과물에 대해서는 모두가 운동삼아 시비를 거는 느낌이 들었다. 10년 전 빅데이터 집필을 제안했던 출판사 사장님외에는 내 편은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자, 반격의 시기가 도래했다. 이제 그대의 외면을 후회로 바꿔주기로 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