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고등학교 특목고화, 1전공은 이공계/전문직만, 인문사회 엘리트 코스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은 우수한 점도 분명히 많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문제점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고 필자가 생각하는 해결책도 간단하게 다루고자 한다. 특히 해결책을 얘기함에 있어서는 판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그동안 사람들이 쉬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 중국 등에서도 교육을 받은 바 있고 일반적 수준의 학생부터 대단한 엘리트들까지 다양한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교류를 한 바 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사실 어느 나라를 가도 현재의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은 나온다는 점이다. 즉 완벽한 교육이란 없다. 하지만 교육에 특정한 목표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특정 교육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다.
한국 교육의 목표가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언어추론/수리추론/외국어 등의 역량에서 평균적으로 높은 성취를 거두게 하는 것이라면 필자는 한국 교육에 100점을 주고 싶다. 우리 학생들은 분명히 글로벌하게 보아도 학업성취의 영역에 있어서는 평균적으로 우수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느끼는 이 불편함은 무엇일까? 단순히 경쟁의 과열 때문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가계가 소득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해 사교육비를 지출하며 교육을 시킴에도 불구하고 어느 연구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생산성이 OECD 최하위 (33위)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이 낮으니 자연스레 소득도 낮을 수밖에 없다. 돈과 시간을 갈아 넣어 무언가를 열심히 배웠는데도 대다수가 생산성이 낮은 노동을 하며 낮은 소득을 받으니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에 너무 많이 투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아웃풋에 대한 기대를 지나치게 높이는 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느 연구조사에 따르면 식비, 주거비 대비 사교육비의 지출비중이 최대 97.3% (소득 5 분위)라고 하는데 OECD 어느 나라를 살펴봐도 이러한 나라는 없다. 이렇게 자식공부에 사적으로도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중국, 인도 등 특정 개발도상국에서 만연한 현상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고 높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얘기인즉슨 대다수 가계의 아웃풋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더 불편한 얘기를 하자면 많은 투자를 받았지만 결국 낮은 소득을 받는 직장에 취직한 자식은 그 부모가 본인의 사교육을 위해 포기한 노후대비만큼을 경제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가뜩이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는 현 상황에서 자식은 사회 초년생 때부터 자연스레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전공과 취업의 불일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적성과 관계없이 고등학교에서는 수능/내신에서 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공부한다. 국어, 수학, 영어는 사실 도구학문으로 일정 수준만 된다면 다른 학문을 공부하고 실제로 일을 하며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장 OECD 국가들, 특히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등 이른바 교육 선진국들의 중등교육 (대학입학 전) 시스템을 보라. 국제적으로 큰 인정을 받고 있는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SAT/AP, A-level 등 시스템뿐만 아니라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내수용 교육제도를 보아도 우리처럼 일찍이 본인의 적성과 진로는 고려하지 않고 도구학문에서 한두 문제를 더 맞히는 데 혈안이 되는 교육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이런 학생이 성적에 맞춰 아무 전공이나 골라 대학을 가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성적에 맞춰 간 학교에서 이른바 "열심히 공부하여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 결국 그동안 공부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이제 그 직업에서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서른이 넘어 무언가 배우고 적용하기에 급급하니 융합이나 창의성 같은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육아의 부담까지 있다면 더 이상 자기 계발은 불가능의 영역에 도달하며 워라밸까지 생각한다면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해질 뿐이다. 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 하지만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의 생산성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안 그러면 IT 인프라, 축적 자본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산업수요가 충분한 전공을 하거나 전문직종으로 나아간 (국가자격증 취득 포함)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부모도, 자식도, 국가도 재미를 보지 못한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문성 있는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고 전문성의 기초 위에 융합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 기업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들어와도 신입 때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 전문성이 없으니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그만큼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함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실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산업현장에 일찍 투입되는 것이다. 그리고 융합은 이러한 전문성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고 나서야 다른 분야의 지식도 활용하며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교육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나치게 특성화 교육을 무시하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반대로 융합 교육이 너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쉽게 말하면 고등학교 때 국영수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탐구과목 2개에서 한두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공부한 학생이 대학에 가 전문성을 제대로 기르기에도 급급한 시기에 전공 교육과 융합을 위한 교양 교육이 동시에 받고 있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기르기가 힘들다. 더더군다나 본인의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적 맞춰 간 학교의 전공이 산업수요가 적다는 것을 알아 전공을 바꾸려 한다면 전문성을 기르는 시기는 더더욱 늦춰진다. 이 시기에 여러 과목을 공부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이는 효과적으로 융합의 토대를 쌓는 것이 아니다. 융합이란 특정 분야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을 시도함으로써 빛을 발하는 것인데 아직 특정 분야에서 기초도 제대로 쌓이지 않았는데 다른 분야에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에 대한민국 교육은 너무 오랫동안 학생의 적성과 흥미 존중, 공정한 선발, 우수 자원의 확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쳐버렸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기가 노력한 대비 충분한 수입을 얻는 것을 원하고 국가는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산업 수요에 맞게끔 인력을 수급받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왜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는가? 전 세계 어느 선진국을 보아도 우리처럼 대학에 가기 위해 대학에 가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진학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으면서 생산성이 바닥인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해결책을 논의해 보자.
소제에도 있듯 첫 번째는 고등학교의 특성화 (혹은 전체 고등학교의 특목고화)다. 필자는 이미 한국에 특성화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극소수의 엘리트 교육을 위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제외한 전체 고등학교의 특성화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 있을 때는 착각하고 기업에 있을 때는 깨닫는 것이 전문성은 결코 교육만으로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학교에서는 충분한 전문성을 기를 수 없다. 전문성을 기르려면 교육도 받아야 하지만 일찍부터 사회진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산업수요에 맞추어 정원을 조정하여 전체 고등학교를 상경/공학/보건의료/자연과학/IT/예체능 등으로 특성화시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겸한 사회 진출 시기를 최소 5-10년 앞당기고 (물론 이 시기는 교육에 더 포커싱을 두는 것이 맞다) 각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대학/대학원에 가는 것이다. 요즘 대기업들은 이른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적합한 전공을 한 학생이라도 "경력"이 없으면 이른바 "인턴" 자리에도 좀처럼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아무리 똑똑하고 적합한 전공을 하여도 이 사람을 당장 돈을 주며 교육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이미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고 눈이 높아진 대학생들은 대기업/중견기업 외에는 가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은 다르다. 아직 투자 대비 아웃풋에 대한 부담이 적을 때, 우리는 이들이 중소기업에서, 필요하다면 무료로라도 산업현장에서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학교에서는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대학 가서 공부는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논의하는 고등학교의 특성화는 직업학교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학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스터고가 아니라 프랑스의 그랑제꼴 (Grande Ecoles)과 유사하다. 특성화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학생들이 대학 가서 따로 공부하는 전문직 자격증 공부도 일찍부터 시키고 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도구과목도 철저하게 가르치는 곳이다. 한두 문제 더 맞히기 위해 공부하던 그 자세로 공부하고 일을 하면 어렵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차이는 이렇게 해서 빠른 시일 내 (특히 대학 졸업 시) 나름 경력도 있고 그 분야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전문가가 되면 분명히 자신이 그동안 노력한 것 대비 우수한 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 번째 파트에서 다룰 인문사회 엘리트 코스를 제외하고는 대학에서 1 전공은 공학, 자연과학, 국가자격증 취득을 위한 전문직 전공 (의학, 법학, 회계학 등)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대학생이라면 모두 이공계 전공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인문사회는 교양으로서 필수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는 전 세계에서 너무도 많은 학생들이 인문사회 전공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정작 해당 전공을 살려 취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학서열화가 철저해 성적에 맞춰 대학을 먼저 고르고 그다음에 학과를 고르는 경향이 있는 한국에서 이와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요한 것은 그 대다수의 학생들은 심지어 해당 학문에서 업적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다. 산업수요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데다가 적성도 흥미도 없는데 지속해서 노동시장에 생산성이 매우 낮은 고급인력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 학사졸 인력)을 꾸준하게 공급하는 것은 본인에게나 국가경제에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인문사회 교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업수요를 고려했을 때, 대다수의 일반 학생들은 대학을 갈 것이라면 공학, 자연과학, 전문직 전공을 하는 것이 맞으며 인문사회는 교양 수준으로만 공부해도 충분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과학기술인력과 전문직 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공부에 들인 돈과 시간만큼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도록 넛지 (Nudge)를 가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대학진학률 하에서 이공계/전문직 고급인력 공급이 과다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입학 정원 조정과 함께 진행을 하면 될 일이다. 고등학교 특성화가 선행되어 잘 정착한다면 분명 평범한 성적의 많은 사람들이 굳이 대학진학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이 제도도 그에 맞추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앞의 두 해결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어도 여전히 한 국가의 인문사회 역량이 저하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제시하는 것이 인문사회 엘리트 코스의 신설이다. 프랑스의 파리정치대학 (Sciences Po), ENS (Ecole Nationale Superieure)와 같은 인문사회 엘리트 대학을 별도로 신설하는 것도 좋고 기존 명문대학의 인문사회대학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최소 석사과정까지는 이어서 마치게 하는 코스를 만들고 우수 인재의 유입이 필요하다면 국가 차원에서 장학금을 주는 방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인문사회는 산업수요가 현저하게 적어 지금도 사실상 국가의 인문사회 역량이 대부분 극소수의 인문사회 엘리트들로부터 획득되는 상황에서 허수 인원을 제외하고 실제 재능과 열정이 있는 자가 인문사회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문사회계의 위상과 소득 모두 상당히 증가하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사회적으로 많은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은 정하되 각계각층과 논의하고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진행하면 분명 도달 가능한 목표다. 부모, 자식, 국가경제 모두 불행해지는 현재의 교육, 굳이 이대로 갈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