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나면 나는 직장의 누군가와는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 "일상"이라는 확고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세계를 확보하고 그 세계의 안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자꾸만 내게 별 의미도 없는 연락을 하는 직장동료들이 있다. 몇 번은 참았지만 더 이상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보다 못해 나는 퇴근 시간에 한해 그들을 차단했다. 그러다가도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오래간만에 아버지께 안부를 여쭙는 길에 최근 내가 취한 조치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전화상으로는 묵묵히 들으시던 아버지가 이틀 뒤 내게 편지를 보내셨다.
9월 17일
아들 보아라,
여름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구나
환절기에도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다른 게 아니라 일전에 네가 얘기한 것을 듣고 아비가 생각하는 바를 나누고 싶어 이리 글을 써 보낸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
사람은 다른 말로 인간이라 하는데 인간은 한자로 人間, 곧 사람 인 자에 사이 간 자를 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짐승은 짐승 사이에 있기에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기에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간을 사람 사이의 도리, 혹은 이를 체화한 자로 보는 너의 해석은 일견 마땅하나, "도리"라는 것은 오직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우선 있고 도리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없는데 도리만 있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와 행복의 추구는 우선 사람 사이에 "있음"을 강화하고 난 연후에 "도리"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앞전의 것과 충돌해서는 아니 되며 충돌할 경우에도 후순위 後順位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글을 다 읽고 나서 처음에는 장문의 답장을 작성해 보낼 준비를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작성한 걸 지우고 직장동료의 차단을 풀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완전히 납득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의외로 재미없지 않아 다른 이들과도 한번 대화를 나눠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천적으로 기회를 봉쇄하기보다는 혹시 대화를 나누어 즐겁다면 일상의 새로운 활력이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