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퇴근 후에 연락하는 직장 동료를 차단하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by 민호

퇴근하고 나면 나는 직장의 누군가와는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 "일상"이라는 확고하게 구분되는 또 다른 세계를 확보하고 그 세계의 안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자꾸만 내게 별 의미도 없는 연락을 하는 직장동료들이 있다. 몇 번은 참았지만 더 이상 나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보다 못해 나는 퇴근 시간에 한해 그들을 차단했다. 그러다가도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오래간만에 아버지께 안부를 여쭙는 길에 최근 내가 취한 조치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전화상으로는 묵묵히 들으시던 아버지가 이틀 뒤 내게 편지를 보내셨다.


9월 17일

아들 보아라,


여름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차 있구나

환절기에도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다른 게 아니라 일전에 네가 얘기한 것을 듣고 아비가 생각하는 바를 나누고 싶어 이리 글을 써 보낸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

사람은 다른 말로 인간이라 하는데 인간은 한자로 人間, 곧 사람 인 자에 사이 간 자를 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짐승은 짐승 사이에 있기에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기에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를 비추어 보면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행동은 과연 사람답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이 뜻을 한번 돌이켜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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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짧았지만 보고 난 후에 내 불편함은 더욱 강해졌다. 전화를 드릴까 하다가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억울한 마음에 편지를 써 내려갔다. 다음날 우체국으로 가서 송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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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아버님 평안하신지요,


작일에 창문에 맺힌 서리를 보니

가을은 온 데 간 데 없고

겨울이 문 앞으로 온 것 같습니다.


간밤에 아버님께서 조언해 주시는 바를 보았습니다. 다시금 소자 小子의 부족함을 깨닫고 또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소자가 곱씹어 생각하여도 다르게 생각하는 바가 있어 소자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곧 인간 人間으로, 그 뜻이 사람 사이를 의미하는 것은 사실이오나 그 근본은 물리적인 "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일전에 짐승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짐승은 짐승 사이에 있어야만 짐승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있어도 짐승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짐승 사이에 있어도 사람을 사람이라 할 것은 그 사람이 마땅히 사람의 도리를 알고 知 또 행하기 行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것으로서, 또한 타인의 것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의 으뜸은 자유이고 둘째는 행복의 추구입니다.


즉 다른 이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소자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극대화하는 것은 지극히 사람답다 할 것입니다.


부디 소자의 뜻을 헤아려 주시어 꾸짖는 뜻을 거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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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이 잘 전하여졌는지 그 주에 답장은 없었다. 그러다 한 주가 지나고 오늘 저녁에 카톡이 왔다. 나는 조심스레 그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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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아들 자느냐,

간밤에 술을 한잔하고 났더니 출출하여 쿠팡이츠를 이용해 닭튀김을 주문해 보았는데

주문을 금세 잊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이제 네가 나보다 낫겠구나.

하지만 여전히 네게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 이처럼 또 글을 보낸다.

인간을 사람 사이의 도리, 혹은 이를 체화한 자로 보는 너의 해석은 일견 마땅하나, "도리"라는 것은 오직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우선 있고 도리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없는데 도리만 있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와 행복의 추구는 우선 사람 사이에 "있음"을 강화하고 난 연후에 "도리"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앞전의 것과 충돌해서는 아니 되며 충돌할 경우에도 후순위 後順位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항상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사람 사이에 있음, 곧 사람다움을 생각하였으면 좋겠구나.

밤기운이 차니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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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고 나서 처음에는 장문의 답장을 작성해 보낼 준비를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작성한 걸 지우고 직장동료의 차단을 풀었다. 아버지의 말씀을 완전히 납득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의외로 재미없지 않아 다른 이들과도 한번 대화를 나눠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천적으로 기회를 봉쇄하기보다는 혹시 대화를 나누어 즐겁다면 일상의 새로운 활력이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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