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rina 예찬: 내 친구 Sabrina의 27번째 생일을 맞아
하지만 기억이 남기지 못하는 것을 때로는 물건이 남기는 법이다. Sabrina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수저를 부러워하지만 금수저는 그 본질상 타동(他動)적이다. 그들은 세상에 물자가 떨어지면 사흘도 채 생존하지 못한다. 나는 Sabrina 네가 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기를 원한다. 이름을 남기는 자는 역사 속에 살아남는다. 심지어는 세상이 없더라도 그들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이것을 주겠다."
그렇게 Sabrina가 받게 된 것은 금주전자였다. 수저는 오직 받기 위한 것이지만 주전자는 오직 주기 위한 것이다. Sabrina는 태어날 때부터 받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주기 위한 존재로서 규정된 것이다. 어찌 보면 갓 태어난 갓난아이에게는 가혹한 숙명(Destiny) 일 수도 있겠다. 주기 위한 인생은 -비록 그 인생이 매우 가치 있고 종국에 많은 사람들이 손뼉 치는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인생은 아니다. 그들(Giver)에게 희생이란 숭고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일상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반진화적(Anti-Evolutionary)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 새끼들마저도 챙겨주는 참새 부모는 자기의 참새 자식을 돌보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Sabrina가 Giver로서 규정된 채 태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녀의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녀와 같은 사람들은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무언가를 주어야 비로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내가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Sabrina는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27번째 생일을 맞이한 오늘까지, 그녀만큼이나 사랑을 주는 데 익숙한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만큼이나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도 드물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Giver는 세상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다. 일찍이 Sabrina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듯 역사는 자동적 존재들의 의지로 흘러간다. 그래서 금수저는 영원히 사람을 감화시킬 수 없고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금주전자는 다르다. Sabrina의 27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잘 태어남 (Well Born)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