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마시고 건강해 주세요, 제발
곧 간호사로 일한 지 2년이 된다. 종합병원에서 1년, 그리고 상급종합병원-흔히 말하는 대학병원-에서 1년. 매번 병원 욕만 엄청나게 했지만 오늘은 내 기억에 남는 감사하고, 내가 참 사랑했던 환자분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퇴원비 결재 2번 하신 할아버지>
때는 작년 9월, 나는 1인실, 2인실을 위주로 하는 잡과 병동에서 갓 독립한 신규 간호사였다. 그때 우리 병동은 VIP 병동은 아니지만 1, 2인실을 원하는 환자분들이 자주 오시는 병동이었다. 잡과 병동에서 독립한 지 1주일도 안 되는 신규 간호사란 무엇을 뜻하냐면 '병원 생태의 95% 정도를 모르는' 상태의 간호사라고 보면 된다.
내가 담당했던 환자 중 대장암으로 항암요법을 하시는 70대 후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케모포트-항암제를 주입할 수 있도록 쇄골 아래쪽 피부에 심은 기구-를 가지고 계셨는데, 인턴 선생님께서 케모포트 바늘을 잘못 삽입해 두 번 찔렀을 때도 "어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씀하시며 너털웃음을 짓는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한 번 입원 시마다 2박 3일의 항암 일정이 끝나면 퇴원하시는 일을 반복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날이 흐르고 흘러, 데이번으로 출근한 내가 그 환자분의 퇴원을 내가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문제는 그날, 내가 보는 환자분 중 갑자기 상태가 위급해진 다른 환자분이 계셨다.
상태가 위급해진 환자분은 새벽 2시부터 갑자기 혈변을 다량으로 보셨다. 일반인이 봐도 이건 피가 100% 섞였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붉은색의 혈변이었고, 혈압이 떨어지며 맥박이 치솟았다. 급하게 피검사를 나간 결과 빈혈 수치가 10점대에서 7점대로 갑자기 푹 떨어져 수혈을 시작했고, 응급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복부-내 기억 속으론 위장- 쪽의 동맥이 터져 출혈이 생긴 것이었다. 검사와 동시에 터진 대동맥을 지혈하긴 해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환자는 계속 혈압이 떨어지고 심지어 호흡곤란까지 호소했다. 환자를 처치실로 옮기고 산소, 혈압계, 심전도기기 등 의료 장비들을 달았으며, 소변줄을 꼽고 빨간 피 5개를 더 수혈하고, 승압제-혈압 올리는 약-과 염기 수액-피가 다량으로 나면 혈액 순환 문제로 몸이 산증에 빠질 수 있다-을 달았다. 그리고 지혈해야 하니 지혈제가 섞인 수액과 위장약 수액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계속 낮아 수액도 급하게 1000ml 정도 주입했다.
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담당 간호사가, 하필 그 사람이 제대로 혼자 일해본 지 1주일도 되지 않는 나였다...... 그리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 병동이 유난히 바빴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은 가차 없이 상태가 회복된 환자들에게 당일퇴원 처방을 내셨고, 이 환자 말고도 유난히 이 날 병동에 일이 많았다.
이 날 내가 담당한 환자는 12명이었는데, 상태가 저리도 좋지 않은 중환자 1명을 낀 상황에서 당일퇴원이 3명 더 결정됐으며 피검사 수치를 보고 새로 약이 처방이 바뀐 사람이 5명 이상이었다. 이걸 혼자 일한 지 고작 4일째인 신규 간호사가 모두 해결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다. 차지 선생님-일반 회사로 치면 팀장님 급-이 나를 따로 데려가서 "괜찮아. 나도 같이 도와줄게. 우리 해내보자."라고 말씀해 주시며 눈물을 닦아주시지 않았으면, 난 정말 이 날 일하고 바로 사직서를 냈을 거다.
아무튼 차지 선생님의 도움과, 한국인 특유의 정신 "안되면 되게 하라."가 갑자기 발동된 탓인지 결국 다 해냈다. 해내긴 했다. 당일퇴원 하는 사람의 약을 몇 개 반납 못했고, 점심 식후 먹는 약을 못 돌릴 뻔하기도 했고 아침 10시에 혈당 재는 걸 11시에 재긴 했지만 어쨌건 성공했다. 어쨌건. 심지어 저 복부 대동맥이 터진 분도 중환자실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내가 위에 언급했던 할아버지, 대장암으로 항암 하시던 할아버지도 이 답이 없는 날에 퇴원이 결정된 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분은 대장암 말고도 고혈압, 당뇨가 있어 여러 약을 드셨고 본원 내분비내과와 심장내과를 다니시는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퇴원 전 날에 이번에 퇴원할 때 집에 당뇨약과 혈압약이 다 떨어졌으니 항암 후 통상적으로 먹는 약 5일치+당뇨약 1달치+혈압약 1달치를 같이 달라고 요청하셨었다.
그러나 복부 대동맥이 터진 환자를 간호하는 와중에 당일퇴원이 3명이 더 추가된, 아주 바쁜 상황을 겪는 신규 간호사에게 그 약들을 제대로 챙길 정신머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퇴원 환자의 경우 1) 퇴원 처방 2) 퇴원 약 3) 퇴원 후 외래 날짜 4) 외래 때 검사가 있는지 5) 재입원하는지 6) 혹시 소독할 것은 없는지 이렇게 1~6을 확인해야 한다. 하필 이 할아버지의 경우 그 당일에 퇴원하기로 약속은 되어 있었는데, 전날 미리 퇴원 처방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즉 이런 상태였다는 거다.
처방(있어야 하나 아직 없음), 약(처방 있어야 함, 처방 없으니 올라오지도 않음), 외래(필요 없음), 검사(재입원 전, O), 재입원(O), 소독할 것(X)
결국 퇴원 당일에 퇴원 처방이 나고 할아버지의 퇴원 약을 퇴원 당일에서야 처방을 줬다. 그리고 딱 한 마디 했다. "약도 다 처방 냈으니 이제 퇴원 보내주세요." 심지어 그 처방도 내가 선생님처방언제주실거예요? 선생님진자저한번ㅂ만살려주시면안될까요ㅠㅠㅠㅠㅠㅠ 라고 메시지를 3번 보내서야 처방이 났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보는 환자도 어디 한 두 명인가. 그런 와중에 저렇게 자꾸 우는 메시지가 오니 짜증이 나시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떡해, 나는 빨리 이 할아버지를 퇴원시켜야만 했다. 심지어 그 할아버지가 퇴원하고 자리를 빨리 치워야 응급실에서 신규 환자가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퇴원처방도 받았겠다, 약도 어쨌건 처방이 났겠다, 나는 할아버지를 빨리 퇴원시키는데 집중해 원무과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희 이 분 빨리 퇴원 계산 좀 마감해 주세요!!! 그리고 전화하자마자 할아버지께 가서 "할아버지!!! 우리 원무과 가서 수납하고 오시면 약이랑 퇴원 설명 다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착한 할아버지는 자기보다 최소 50살 아래인 사람이 숨 헉헉대고 머리가 다 헝클어진 채로 수납하러 빨리 다녀오라고 하니까 으잉? 하시다가도 어엉 알겠어~ 이러면서 수납하시러 가셨다.
어쨌건 그렇게 퇴원을 보냈다. 할아버지한테 퇴원약도 다 설명드렸고, 할아버지는 딸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히 집에 들어가셨다. 그렇게 다 마무리되나 싶더니........
정확히 4시간 후 전화가 왔다. 정확히 나를 찾는 전화였다. 직장생활을 많이 한 분은 아시겠지만, 내 이름을 딱 찝어 나를 찾는 전화가 있으면 그건 뭔가 망한거다. 뭔가 쎄~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았습니다. OO병동 간호사 OOO입니다."
"넵 안녕하세요. 저 아까 퇴원한 ㅁㅁㅁ(할아버지) 님 딸인데요... 죄송한데 저희 아빠 약을 덜 주신 것 같은데요... 저희 아빠 혈압약이랑 당뇨약이 없어서요."
"네?"
설마 내가 사고를?
심장이 튀어나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설레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는 퇴원약칸-약국에서 올라오는 모든 환자분들의 퇴원약이 들어가는 곳-을 봤고, 그곳에는......... 그 할아버지의 혈압약과 당뇨약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오늘 추가된 약의 처방만 받고 그게 잘 올라오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할아버지를 퇴원시킨 거였다. 결론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일한 지 3일 만에 사고를 치는 신규가 있다? 그게 바로 접니다.
나는 빠르게 차지 선생님께 이 상황을 보고했고, 차지 선생님은 오늘 내가 제일 고생한 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셨기에 나를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눈으로 함께 바라봐 주셨다. 결국 나는 사비로 퀵을 불러 할아버지의 퇴원약을 보냈다. 할아버지의 집은 익산이었고 익산까지의 퀵의 비용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그날 저녁 7시에 퇴근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가는 삶은 참 눈물나게 감동적이었지만, 정신없이 일하느라 간호기록은 커녕 내가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 해서 그 일들을 메꾸고 간호기록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 10시에 전화가 왔다. 나이트 번 선생님의 전화였다. 이것도 촉이 쎄했다. 절로 긴장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나는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전화받았습니다. OOO입니다."
"응 OOO 선생님. 오늘 혹시 ㅁㅁㅁ(할아버지) 님 퇴원 OOO 선생님이 보냈어요? 이 환자 퇴원약이 청소하다가 퇴원약 칸에서 발견됐는데.... 혹시 이게 뭔지 아나요?"
그러게요 저도 정말 모르겠는데요...?
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여기서 이런 말을 했다간 사회생활이 끝난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침착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드렸고, 아마 퀵을 보내는 과정에서 제가 누락시킨 것으로 추정되니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확인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한 나는 할아버지의 따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혈압약과 당뇨약을 포함해서, 할아버지는 필요한 모든 약을 다 갖고 계셨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진료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전공의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입원하자마자 퇴원약을 한 번 처방을 내시고, 퇴원 전 날 또 한 번 처방을 내셨던 거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혈압약과 당뇨약 제외 동일한 약이 2개 처방 나서 병동에 2개 약이 모두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신규간호사의 좁은 시야로 인해 그중 1개만 내가 챙겨드렸는데-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그게 맞았던 거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혈압약 1개+당뇨약 1개+항암 후 통상적으로 필요한 약 1개만 원했는데 그 전공의 선생님 처방대로라면 혈압약 1개+당뇨약 1개+항암 후 약 2개를 가져가셔야만 했던 거니까.
어쨌건 항암 후 약 처방이 2개 있었던 덕에, 할아버지는 퇴원약으로 혈압약 1개+당뇨약 1개+항암 후 약 2개 이렇게 가져가시는 걸로 계산이 되었던 거다. 나는 그래서 할아버지가 원래대로 혈압약 1개+당뇨약 1개+항암 후 약 1개만 가져가시는 걸로 계산을 할 수 있도록 남은 약을 반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반환하려면 퇴원 시스템을 해제하는 사유서를 써야만 했고 이건 수선생님께도 알려야 하는 사항이었다. 나는 수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며 사유서를 썼고 당연히 수선생님께 어엄청 혼났다^^!
그 후 원무과에 머리를 조아리며 약 반환을 위해 전산을 해제해 달라 요청드렸고, 약국에 전화해 어제 퇴원한 분의 약이지만 약을 이제 반환하니 받아주십사 머리를 조아렸고... 아무튼 그렇게 할아버지의 모든 퇴원을 마무리 지었다. 비록 토요일날 퇴원하셨는데 일요일날 퇴원 결제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시긴 했지만.
할아버지의 따님께도 다시 전화해 상황을 설명드렸다. 따님은 흔쾌히 카드 번호를 알려주셨고, 꼼꼼하게 확인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퇴원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3주 후, 그 할아버지가 다시 항암을 하러 우리 병동을 찾았다. 이번에는 보호자로 아내 분과 함께 오셨다. "ㅁㅁㅁ님! 또 오셨네요, 이번에는 제가 절대 약 안 빼먹을게요." 나는 할아버지를 아는 척하며 반가워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내게 잘 지냈냐고 물으셨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아내 분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아유, 선생님이죠? 딸한테 얘기 들었어요. 우리 아저씨 약 때문에 사비도 쓰고, 결재도 여러 번 했다면서요. 안 그래도 이 양반이 선생님께 정말 고마워했었어요. 자기 퇴원하는 날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위쪽의 복부 대동맥 터진 환자 때문에- 누가 봐도 바빠 보였는데, 그 와중에 자길 꼼꼼하게 챙겨줘서 너무 고맙다구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약값이 이상하든 말든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누군가 마음을 탁, 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를 퇴원시키는 날, 중환자를 보면서 환자 여러 명을 퇴원시키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선생님들은 '아무리 바빠도 네가 잘 봤어야지!'라고 말씀하시고, 심지어 전산 해제 때문에 수선생님께 일을 꼼꼼히 해야 한다며 혼이 나서 나라는 인간은 왜 이러나- 하고 약간 자책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3주마다 아내분과 함께 우리 병동을 찾으셨고, 나는 그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퇴근할 때 그 할아버지가 계신 방에 가셔서 "할아버지, 오늘은 몸 괜찮으세요? 저는 이제 퇴근해요. 할아버지도 내일 집에 가시죠? 조심히 가세요." 이런 말을 하고 퇴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셨는데, 참 이상하게도 그 웃음을 볼 때마다 지칠 때 힘이 났다.
지금도 나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게 참 어렵다. 그때처럼 중환자를 보면서 퇴원 환자들을 상대해야 한다거나 진상을 부리는 분을 볼 때면 마음이 참 힘들다. 그렇지만 그때,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고맙다'라고 말해준 그 덕분에 아직까지 힘을 내고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참 선한 일을 했구나, 그 생각이 나를 지금까지도 일하게 한다.
이제 그 할아버지는 길고 긴 16차 항암을 다 마무리하신 채 더 이상 입원하지 않으신다.
현재는 그분의 소식을 알 수 없지만, 부디 그 할아버지가 이제는 암이라는 지긋지긋한 골칫거리와 영원히 이별하셨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이다.
나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첫 번째 환자분이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