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끌어안기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하여
"직장생활은 다 필요 없어. 사람이 제일 중요해. 일? 그거 힘들어도, 사람 좋으면 버틸 수 있다."
나보다 먼저 입사한 친구가 한탄하듯 말했다. 30분 웨이팅을 해서 들어간 강남의 회전초밥집은 평일 점심인데도 가게에는 손님이 은근히 많았다. 대화 소리, 벨 누르는 소리 등으로 가게는 시끌벅적했고 그다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만나자마자 친구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이야기보따리를 와르르 풀기 시작했다. 당시 입사 전이었던 나는 아직 공감하지 못하는 병동 이야기, 인성 파탄 환자 이야기 등등. 한창 배고팠던 나는 음식을 입에 밀어 넣으며 대강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말은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하필 왜 저 말이 유난히 귓가에 쏙 들어오던지. 어쩌면 저 말을 할 때 친구의 표정과 목소리가,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찐' 직장인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복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의 작년은 객관적으로 봐도 빡빡하게 굴러갔다. 1월에 간호사 국가고시를 치고 2월에 합격 통보를 받은 후, 3월에 바로 병원 입사. 심지어 3월에 친구를 포함해 3명이 그 병동에 입사했는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친구를 제외하고 모두 사직했다.
마음을 나눌 동기 하나도 없이 혼자 막내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친구는 매일같이 울면서 출근했다. 일이 힘들어,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친구는 전화할 때마다 흐느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애가 갑자기 모든 걸 깨달은 얼굴로 직장생활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열변을 토하니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은 것이다.
"너 지금까지 전화했을 땐 일하는 게 제일 힘들다매. 근데 갑자기 사람?"
"아냐. 야, 내가 그래도 이제 곧 2년 차 올라가는데… 막내로 1년 살아보니까 알겠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진짜."
아직 직장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애송이에게 직장생활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봤자 이해를 할 수 있을 리가. 본인도 타당한 근거를 들진 못하지만 어쨌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이건 진리다,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몇 번 고개만 주억거려주곤 말았다. 그래. 중요한가 보다. 그런가 보다. 그날 친구와의 대화는 이렇게 별다른 결론 없이 끝났다.
그리고 내가 친구의 말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된 건, 첫 병원에서 신나게 고통당해 사직한 뒤 두 번째 병원에 들어가 일하면서였다.
첫 번째 병원을 때려치운 뒤, 나는 정말 우울했고 모든 일에 화가 났다. 교회에서 반주를 칠 때마다 하나님, 왜 이런 고통을 주세요? 어디 나와서 얘기 좀 해보세요.라고 기도하며 울분에 찬 연주를 했고 매일같이 집에 틀어박혀 누워만 있었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답답해 매일같이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결국 나에게 화를 내거나,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길 반복했다. 나를 힘들게 한 장본인들이 하나같이 미워 죽겠다가도, 결국 그 모든 걸 버티지 못한 내 연약함이 가장 문제인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한 달간을 힘들어하다가 어느 날, 이렇게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닌 거 갖고 일부러 나를 몰아세우던 그네들은 내 존재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잘만 살 텐데, 뭐하러 내가 걔네들이 준 고통을 이렇게 안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현실적으로도 돈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서 집 근처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을 찾아 지원했다.
거기서 1년만 버텨보고 간호사를 그만두자. 만약 그곳에서도 1년도 못 견디겠다면 정말 내가 간호사가 안 맞는 사람이니 영원히 때려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지원한 병원은 다행히 나를 합격시켰고, 그렇게 나는 간호사의 옷을 벗은 지 1달 만에 다시 간호사가 되었다.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시기에 입사해 현재까지도 다니고 있는 두 번째 병원은 왜 그렇게 친구가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지 백 번 이해하게 만들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A를 A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A를 넘어 당당하게 D와 Z까지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잘 맞는 동료가 있었고 아닌 동료가 있었다.
내가 그날 근무를 순탄하게 보냈든, 여러 사건들로 환장하며 보냈든 간에 시간은 그저 흘러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동기들이 몇 명 더 생겨 있었고 후배들이 들어왔다.
그날은 입사한 지 막 1개월이 지난 귀여운 애기 선생님과 나이트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라운딩을 돌아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한 뒤,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같이 들어온 동기들이랑은 잘 지내냐, 어려운 점은 없냐 등 간단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어려운 사람은 없냐는 내 질문에― 애기 선생님은 천진한 얼굴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답을 던졌다.
"저, 사실 처음엔 선생님이 좀 무서웠어요."
"……? 저요? 나????"
네. 애기 선생님이 쐐기를 박았다. 그리곤 덧붙였다. 지금은 아닌데, 맨 처음엔 좀 무서우셨어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는 그녀와는 다르게, 내 머릿속은 당황으로 가득 찼다. 내가 무섭다고? 3살 어린 여동생한테도 친구처럼 취급받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가 나를 어렵거나 무섭게 여길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물었다. 언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으음, 고민하던 애기 선생님이 말했다.
"저 맨 처음 들어왔을 때, 선생님이랑 근무가 겹쳤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나오데-전날 밤새서 야간근무를 하고 퇴근한 뒤, 24시간도 쉬지 못한 채 아침까지 출근해야 하는 최악의 근무- 하신 날이라 조금 예민하셨어요. 선생님도 '내가 나오데 때문에 많이 피곤해서 그런 거지 선생님에게 화난 거 아니에요',라고 저한테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때 '정~말 실수하면 안 되겠다, 어떡하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그때 선생님이 무서우시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해주셔서 좋아요. 애기 선생님이 그렇게 말을 맺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둘 다 서로의 일로 돌아갈 무렵, 나는 천천히 애기 선생님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니, 애기 선생님이 말하는 게 언제의 일이었는지 단박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날은 정말 짜증이 났다. 제대로 잠을 못 자서 피곤한 와중에 일은 쏟아지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애기 선생님은 불안한 마음에 일 하나 할 때마다 나에게 물어봤다. 내 귀는 두 개인데 이렇게 일할 거면 적어도 귀가 네 개 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분명 그때의 상황이 나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맞지만, 그날의 바쁨과 나의 힘듦이 애기 선생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굳이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자면 힘든 근무를 주는 윗사람과 인력을 늘려주지 않는 회사 측의 잘못일 것이다. 그래서 그날의 나는 애기 선생님이 뭔갈 물어볼 때 최대한 짜증 내지 않고 대답해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기 선생님은 그때의 내 태도를 근거로 나를 예민하고 무서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괜히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규 시절에는, 그 예민한 눈빛 한 번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고슴도치 같은 선배 간호사 한 명이 생각났다. 눈이 크고 부리부리한 그녀는 특유의 분위기부터가 까칠한 사람이었다. 입사 초반 때는 그녀의 태도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입사한 지 한 달째에 "아직도 이걸 못해요?"라고 내게 소리 지르며 라벨 기계를 거칠게 닫던 모습을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현재 그나마 나를 잘 챙겨주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녀를 보며 나는 신규 간호사에게 저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 선배 간호사가 참 어렵다고 느꼈고, 지금도 어렵다고 느낀다. 그녀가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스쳐 지나가듯 얘기한 전전 남자 친구와의 망한 미술관 데이트 썰을 그녀가 아직도 기억함을 안다. 자신이 쓰지 않는 콘택트렌즈나 히트택을 내게 그냥 줄 정도로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런 나에 대한 관심과는 별개로, 그녀가 종종 내게 보여주는 차갑고 예민한 태도는 나를 상처받게 만들었다. 가령 굳이 넘어갈 수 있는 일로 전화를 해서 내게 왜 이걸 해놓지 않았냐고 따진다던가, 질문을 하면 "이걸 왜 굳이 물어봐? 인계했잖아."라고 대답한다던가. 그래서 나는 그녀를 고슴도치라고 생각하곤 했다. 자신의 기분이 좋을 때는 가시를 감추고 있다가, 자신이 힘들고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면 가시를 한껏 세우는.
나는 매번 그녀가 예민해져 나에게 짜증을 부릴 때마다 그녀가 일종의 하악질을 한다고 여겼다. 원래 자주 하악질 하던 사람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약간의 측은함과 포기를 담은 시선은 덤으로. 그리고, 저 하악질을 일단 견뎌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최대한 그녀를 피했고 무시했다.
가끔은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자기감정 하나 컨트롤 못해서 나에게 이걸 표출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나에게만 유독 그러니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주변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건 또 아니라고들 말했다. 아니, 그러면 대체 이 사람의 태도는 뭔데? 나는 그녀 때문에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게 그녀는 도저히 종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녀를 평생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영원히.
그러나 애기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나는 고슴도치 같은 선배 간호사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피곤하고 예민한 상황에서 애기 선생님에게 '무서운 선생님'으로 비춰졌듯, 어쩌면 그녀 역시도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나에게 짜증을 냈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와 별개로 상황이 그녀를 내게 짜증 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근무 기간 동안 그녀의 짜증들이 하나하나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나에게 수술 후 환자 케어에서 심호흡 격려하는 걸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고 엄청 화를 냈던 그날은 유난히 수술이 많은 날이긴 했다. 내가 야간 근무 때 다음 날 수술할 환자에게 머리끈을 주는 걸 빼먹었던 것도, 어쩌면 그녀 입장에서는 힘든 오전 근무를 나오는 데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자기를 두 번 일 시킨다고 생각해서 화가 났을 수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나에게 낸 짜증들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고슴도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또한 나 역시도 특정 상황에선 누군가에게 고슴도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후부터, 나는 고슴도치 선배 간호사가 나에게 짜증을 내도 더 이상 화나지 않는다. 밉지도 않다. 굳이 그녀를 미워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많이 피곤하셨나 보군,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녀의 요구사항을 빨리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는 게 그녀와 나 둘 다의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주는 작은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기 시작했다. 나름 그녀가 나를 생각해준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이제 고슴도치를 적당한 거리에서 끌어안는 법을 안다.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고슴도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