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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형의 고백: 끝내 잡지 못한 그녀

by 진심의 온도

쾅, 소리와 함께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멀리서도 전해지는 기세.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이 레이저처럼 꽂혔다.

순간, 그 시선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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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거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나를 꿰뚫고 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폭소하며 연기를 멈췄다.

재빠르게 몸을 돌려 도망쳤지만, 강의실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었다.


정적.
모든 시선이 우리 둘을 향한다.


그 어색한 순간, 그녀가 억지로 웃으며 내 팔짱을 낀다.

겸연쩍은 웃음이 번지며 긴장은 풀리는 듯했지만, 나는 끝내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너, 핸드폰 어떻게 된 거야? 없는 번호로 뜨던데?”
그녀의 조심스런 질문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모르쇠로 버티려 했지만, 당황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 나 핸드폰 없앴어.”


하지만 그녀는 내 손에 쥔 기계를 가리켰다.
“그럼 이건 뭐야?”

머릿속이 뒤엉켰다.
“…엄마 거야.”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맑고 투명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분명한 거리감이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아주 작게 떨렸다.


“걱정했잖아…”


고개를 숙인 모습은 수줍으면서도 진심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번호를 바꾼 이유조차 밝히지 않았다.


그저 발신제한 전화로 그녀를 흔들어 놓고,

여전히 나를 좋아할 거라 확신하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더 도망쳤다.


그럼에도, 그녀가 나를 놓지 않기를 바랐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다른 남자 선배가 다가와 말을 건네는 모습에 불편함이 몰려왔다.


그럴수록 그녀의 관심을 끌고 싶어,

나는 괜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책상을 발로 찼다.


그녀가 놀란 눈길을 내게 주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유치하고 비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사랑을 끝내 부정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종강날, 시험을 마친 뒤 강의실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시선뿐.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채 사라졌다.


그리고 곧 모델 활동을 위해 휴학을 결정했다.



나는 그녀에게 휴학 사실조차 알리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그녀의 싸이월드를 찾아가 일기를 읽었다.
그녀가 여전히 나를 생각하는지, 감정은 어떤지 확인하듯이.


그날 이후로 내 마음은 늘 후회 속에 머물렀다.
정직하지 못했던 선택, 책임지지 못한 감정, 그리고 끝내 다가가지 못한 비겁함.



나는 여전히 묻는다.


‘미안해서 잊지 못한 걸까?’
‘그녀만큼 나를 좋아해준 사람이 없어서 그리운 걸까?’
‘아니면, 그때의 나를 사랑해준 그녀의 모습 속에서 나를 찾고 있는 걸까?’


비겁한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만,
솔직했던 그녀는 후회 없이 현재를 살고 있겠지.


그때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아직도 내 안에 머물러 있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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