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을 한다는 것 #4
비겁함과 비참함 사이
시작할 땐 '재미있을 거다'라는 부분만큼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애라서, 이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재미없을 리가 없다고 믿었다. 첫 연애를 시작했던 마음처럼, 너무나도 순진하게, 영원이라는 걸 기대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다는 건, 내가 보여주려고 한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드러날 기회가 산적해 있다는 뜻이고, 나 역시 친구의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숨기고 싶든 숨기고 싶지 않든 준비 없이 보이고 보게 된다는 건, 좋을 때야 떨리고 재밌는 일이지만 나쁠 때는 생경하고 당황스럽고 멈칫할 일이 된다.
우리는 빚을 내지 않고 일을 시작하기로 하고, 가게도 최소한의 경비를 들여 꾸리기로 했다. 하지만 자택 하나 없는 세입자로 살아온 우리가 '우리의 가게'를 가지게 되자 조금씩 욕심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자느니 어쩌자느니 말은 많았지만 원래 있던 가게가 공실이 되고 '여기가 진짜 우리 가게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슬금슬금 벽에 뭐, 주방에 뭐, 손님 식탁에 뭐, 창문에 뭐, 간판에 뭐... 하나씩 늘어나는 욕심은 결국 인테리어 업체의 문을 두드리게 만들었고, 우리는 신용보증재단에서 돈을 빌렸다. 그 돈에서 일부는 가게가 자리를 잡기 전까지 사용할 나의 생활비 명목으로 빠졌다.
이때! 이때가 가장 큰 실수였다.
여기서부터 이미 나는 재미를 잃었던 것 같다. 시작하면 근근이 가게 유지비는 벌 거라고 생각했다. 좀 더 지나면 유지비에 더해 우리의 작고 소중한 인건비가 나올 것이고, 좀 더 지나면 신보의 원리금 상환도 너끈하게 갚아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내 생활의 사치 부분을 조금만 줄인다면 생활비 명목으로 뺐던 금액도 차차 갚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모든 상상이 하나씩 깨어져 갔다. 부서진 건 아니지만 천 갈래 만 갈래 금이 갔다. 톡, 치기만 하면 와르르 부서져 내릴 그 균열들이 내 마음을 가련하게 만들었다. 밤이 깊었다. 갑자기 모든 게 잘못된 기분에 울기 시작했다. 엉엉 울다가 하나님을 불렀다가 꺽꺽대다가 크게 기침을 했다. 피라도 토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비겁한 마음인가.
내 경제적 상황 친구보다 열악하기 때문에 이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력'을 계속할 수만은 없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면, 친구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노력을 더 해야 한단 입장이었다.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어려움의 어디까지를 얘기할 수 있는가. 고민의 양에 비해 입 밖으로 나오는 얘기는 너무나 하찮았다. 그 하찮음을 무릅쓰고 나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함께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괜찮은 척을 하면서 비겁한 허세를 보일 것인가. 고3 때도 해보지 않은 날을 새며 고민을 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이 밝아오는 게 곤란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근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맘이 착잡해졌다.
결국 나는 비겁함과 비참함의 중간쯤에서 우물쭈물하며 얘길 꺼냈다. 다 얘기하진 않았지만 내 상황이 어려우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는 더 빨리 이 노력의 결과를 볼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보자고 말했다. 친구의 그 희망이 나에게 커다란 두려움이 되었다.
나에게, 저 희망이 없구나.
그래서 더욱 비참했다. 가게에 대한 꿈이 없는 가게 사장이라니. 이곳은 무어란 말인가. 꼼꼼하게 채운 지난날들과 친구가 더 노력해 보자는 거대한 볼륨의 다가올 날들이 무서웠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나는 비겁하게 친구의 뒤로 숨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친구의 꿈에 빌붙어, <기생충>에 나온 지하실의 그 존재처럼, 나는 숨었다. 비겁함이 비참함을 눌렀다. 처절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