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을 한다는 것 #5
손님을 사람으로 대하는 마음가짐
5년이 조금 넘게 세계맥주집을 운영하던 언니가 맥주잔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젊은 여사장의 애환을 얘기하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님이 오면 이 생각부터 들었단다.
호구인가 진상인가.
그냥 손님은?
없어 없어. 결단코 없어!
단호한 “없어!“에 이어 길쭉한 맥주잔을 들어 꼴꼴꼴 맥주를 넘기는 얼굴이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여서 그렇구나, 했다. 언니 말에 따르면 호구력과 진상력의 차이가 있을 뿐, 손님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나 같은 손님은 리를빗 진상이란다. 지불한 금액에 해당하는 만큼‘만’ 서비스를 받겠다는 고객은 양심적이긴 하지만 지불금액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른 거라서 누가 봐도 갓성비라고 할만한 게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내가 낸 돈이 얼만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단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합리는 그쪽 입장과 이쪽 입장 사이의 갭까지 커버하는 것은 아니란다. 그러니 손님의 합리에 맞지 않는 것이 눈에 띄었다면 진상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하단다. 비합리적인 수준의 진상을 부리는 것은 자기의 체면 때문에 하지 않는 것뿐이라서 실은 체면 차릴 상황이 아니라면 개진상도 가능하단다. 부당하다! 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답 없단다. 언니가 마신 맥주가 세 병째다. 허허 웃었다. 그렇구나.
지불한 금액만큼에 해당하는 서비스는 어디까지일까? 내 생각에는 판매하려는 대상에만 국한된 금액이 기준이었다. 음식이든 물건이든 치료든 서비스든 딱 거기까지가 초기에 세팅하는 금액이고, 매장을 이용한다면, 응대가 필요하다면, 상담을 해야 한다면, 특별한 포장을 하게 된다면, 하나하나 추가된 노동에 합당한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급쟁이일 때도 나는 그랬다. 내가 받는 월급에 상응하는 퍼포먼스를 내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월급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되는 상황이면 또 그것대로, 속이 부글거리는 타입이었다.
나는 우리가 판매하는 음식에 들어가는 공수와 정성이 여타 제품과는 구별되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므로 고객들이 칠천원 언저리의 돈으로 구매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있나. 와서 편히 앉아 몇 시간은 족히 있을만한 공간도 없고, 기가 막힌 포토존도 없고, 내놓을만한 끼깔난 경력도 없고, 상품에 기대하는 금액도 낮은데 나 혼자만 부르짖어 가격을 올려봤자 누가 오구오구 잘했어요 하겠는가. 다들 눈을 세모 낳게 뜨고 비싸다며 타박이나 하겠지. 결국, 배짱이 없었다. 내 생각에야 만원도 받고, 만오천원도 받고, 특별한 서비스라 생각되는 비용은 싹 다 청구하겠다지만 그걸 당당하게 실행할 힘은 없었다. 지금도 비싸다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한테조차 ”그 금액보다 훨씬 더한 가치를 드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물가가 어쩌고 재료 퀄리티가 어쩌고 포장이 어쩌고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는 변명만 할 뿐인 내가, 무얼 할 수 있느냔 말이다. 몇 날을 앓다가 치사스럽게 덜어낸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내 마음값은 뺏으니 이제 억울하ㅈ는 않겠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옹졸함이 그땐 똑똑한 것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니, 망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친구에게는 더더욱 미안했어야만 했던 선택을, 말 한마디 없이, 너는 덜어내자 해도 안 할 테니까-라고 혼자 생각하고 결정했다. 얼마나 이기적이고 미숙한 인간인가.
마음을 듬뿍 담았으면 성공했을 거라는 얘기가 아니다. 가치를 둘 수 있었던 그 마음까지 걷어내고 났더니 가게가 회사와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그걸 알게 된 것은 그다음 달 정산을 할 즈음이었다. 한 달 마감을 끝내고 ‘이번 달은 완전 본전 치기네.’라고 생각하면서 돌아보는데 찾아주신 고객님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오전 행사에 맞추느라 새벽에 출근하기도 몇 번, 직접 배달을 가느라 소카를 빌린 것도 몇 번, 늦어지는 배달대행업체와 재촉하는 고객님의 전화에 마음이 눌린 일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 누가 몇 개를 무슨 구성으로 주문했는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라고 생각했던 두 달 전의 뾰족한 마음을 기억해냈다. 말일이 되어 보니 물류센터 직원처럼 주문한 제품에 맞게 포장을 하고 배달만 했을 뿐, 어떤 고객이 우리를 찾아주셨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이 열린 교회에 들어가 한참을 울고 나왔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나는 왜 고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가. 나는 왜 이 일을 사랑하지 않는가.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가 대신 확언해 주길 기대했다.
넌 원래 부족한 인간이었어.
너한텐 처음부터 못할 일이었어.
그렇구나! 난 이제야 알았는데,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그게 동업자인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구질구질한 마음은 알고 있었다. 그 친구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런 성정의 사람이 아니니, 이런 비겁하고 구질한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일이다. 아깝다고 생각 말고 마음을 담아 그분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 마음에 보상받을 것을 기대하는 대신 이곳에서 내가 이루어낸 것들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내 안에 남아서 나를 키워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웃을 것이다. 그들과의 기억이 노하우를 만들어 주고, 인격을 성장시키고, 가게를 확장시킬 것이다. 믿음을 써야 할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나는 실패했다. 믿음이 없으니 소망이 생기지 않았고, 소망이 없으니 사랑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가치마저 없다면, 이 가게는 이윤을 내지 못하는 무능한 가게에 불과하니, 나는 다시 마음을 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다시 처음 지점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생각했다. 손님만 그런 게 아닌가 봐. 사장도 마찬가지네.
호구인가 진상인가.
진상력 만렙인 사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호구가 되고 싶었다. 호구의 마음을 가지고도 잘 살 꿈은 꾸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자본주의의 노예가 내일의 장사를 위해 잠자리에 누웠다. 울고 또 울었다. 창피해서 남한텐 말도 못 하는 이 추잡한 마음이 안에서 곪았다 터졌다 난리도 아니었다.
손님은 무슨 죄인가.
친구는 무슨 죄인가.
모든 죄는 못난 나한테 있는데.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내 마음 하나 넣은 게 뭐 그리 아깝다고, 그 난리였을까. 돌보지 않은 화단이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처럼, 돌보지 못한 마음이 주변을 어지럽혔다. 그런 시간도 결국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