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지막화

전역 신고, 나에게 보고하다

by Asurai

2018년 10월 8일.

전역증을 손에 쥔 손이 조금 떨렸다.

2년 가까이 발목을 잡고 있던 시간,

억울함과 분노를 삼키며 버텨온 시간,

그 모든 걸 뒤에 두고 부대 정문을 걸어나왔다.


바람이 차가웠다.

하지만 내 안은 뜨거웠다.

이제 끝났다.

세상은 마침내 나에게 자유를 돌려줬다.

그렇게 믿었다.


정문을 지나며 속으로 외쳤다.


“해냈다. 드디어 나도 다시 사람이다.”


하지만 정문을 벗어난 순간

마치 모든 소리가 꺼진 것처럼

세상은 조용했다.


축하해주는 사람도,

맞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창가에 앉아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건 새로운 시작이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집 앞에 도착해

우편함을 열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이 무너졌다.


봉투 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익숙한 회사 이름들,

그리고 처음 보는 빚 독촉장이 섞여 있었다.


“안마의자 렌탈 연체금 고지”

“타이어 렌탈 요금 미납”

“통신비 3개월 체납”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업체들의 청구서.


합계는 약 800만 원.

내 이름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빚이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현관문 앞, 차가운 바닥.

담배를 꺼내 손을 떨며 불을 붙였다.


연기가 올라가는 동안,

내 마음은 더 빠르게 가라앉았다.


“전역했는데… 왜 아직도 나는 갇혀 있는 기분이지?”


평화 따위 없었다.

전역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절벽의 시작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진심으로 바랐다.


부대 문 밖이 아니라… 그냥 시간 밖으로 나가고 싶다.


그날 저녁, 가족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조용히 축하해주고, 고생했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따뜻함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빌 것만 같았다.

축하를 받아도,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잠든 밤,

나는 집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가장 싼 소주 한 병을 샀다.

플라스틱 컵도 아깝다 생각해 병째 들이켰다.


그때 깨달았다.

“아, 진짜로 다시 혼자구나.”


몸은 자유인데

마음은 세상보다 더 깊은 수감 상태 같았다.


휴대폰엔 미납 문자,

통장엔 0원에 가까운 잔고,

이름 옆엔 ‘신용불량’이라는 꼬리표.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오직 하나,

내가 더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병을 기울이며 나는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했다.


“전역 신고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그 말이 목에서 걸려

술과 함께 내려가다가

가슴 속에서 터졌다.


눈물이 함께 떨어졌다.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울지는 않았다.

그럴 힘도 남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길게,

내 안이 비어지는 울음이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번엔… 쓰러지지 말자.”


아무도 듣지 못한 다짐.

하지만 그 다짐만이

그날 밤 나를 붙잡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며 또 한 번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내가 지킨다.”


그게 내 전역식이었고,

내 첫 번째 보고였다.

세상이 나를 외면해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그날 밤,

나는 참 조용하게,

그리고 아주 느리게 다시 일어섰다.


군복을 벗은 그날 밤의 그 다짐은,

새로운 이야기의 첫 걸음이 되었다.

그 이후의 시간들은 다음 브런치북에서 이어가겠다.




응원은 제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23화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