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직전, 문 앞에 선 마음
전역을 몇 달 앞두고,
나는 다시 헌병대로 호출을 받았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건.
그 악몽이 또 나를 잡아끌었다.
조사실에 앉는 순간, 군 생활의 시간들이
다시 과거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수사관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합니다.”
나는 이미 수십 번 설명했던 말을 또 했다.
“전 정말로 피해자예요.”
그럼에도 돌아온 답은 같았다.
“증거가 너무 확실합니다.”
그 말이
전역을 기다리던 마음 위에
커다란 돌처럼 내려앉았다.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 나라는 증거가 진실보다 강할 때가 있구나.”
억울함과 무력함이
한 번 더 내 폐 안에 가득 찼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단단해졌다기보다,
더 조용히 아파지는 방법을 배웠다.
전역을 며칠 앞두고,
다들 설렘에 들떠 있었다.
한 명은 여자친구 만나러 갈 계획을 세웠고,
한 명은 여행을 간다며 숙소까지 예약했다.
다들 “나가면 이거 한다, 저거 한다”는 이야기로 밤을 채웠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있었다.
말로는 “좋겠다. 드디어 나가네.” 웃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어디로 가지?”
군대는 답이 정해진 곳이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옷, 정해진 하루.
그 틀 안에서 버티기만 하면 됐다.
근데 밖은 달랐다.
밖에는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오래 선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세상 밖에는
내가 만든 게 아닌 빚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빚은 내 이름 앞에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를 붙여놨다.
나는 그 꼬리표가
세상보다 더 무서웠다.
“다시 실패하면 어떡하지.”
“나 아직 준비 안 된 것 같은데…”
“다들 시작하는데, 나는 아직도 바닥인데…”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떨리던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진짜 해보자.”
“여기까지 버텼잖아. 이제 나아가야지.”
그 작은 불씨가
쓰러질 듯 말듯한 내 마음 한가운데 있었다.
전역 하루 전 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너머 새벽 공기가 스며들고
막사 안의 숨쉬는 소리가 느껴지는 그 시간.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프지 마라.”
“무너지지 마라.”
“이번엔, 나 자신을 버리지 말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조용히…
“미안하다. 이제는… 잘 살아보자.”
그 말은
세상에게 한 게 아니라
내게 한 약속이었다.
2018년 10월 8일.
부대 정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가볍게 뛰어 나갔고,
가족 품으로 달려갔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찡한 기쁨보다
가벼운 슬픔이 먼저 왔다.
여기선 가난해도 밥은 나왔고,
무너져도 내일이 정해져 있었다.
밖은
내가 다시 만들어야 하는 곳이었다.
“후련하다”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구나…”였다.
행복하진 않았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히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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