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나는 또 걷는다.

by Asurai

사고 다음 날,

나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마음이 먼저 무너져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려고 헬멧을 드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그 충돌의 느낌이 스쳐 지나갔고,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힘든 불안이 자꾸 올라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제 진짜 버틸 힘이 없구나.”


야간 배달은

돈보다 체력과 정신을 동시에 갉아먹는 일이었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달리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살았다.


비 오는 날은 시야가 흐려지고,

겨울엔 손이 얼어 핸들을 잡을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잠은 더 깊지 않았고, 몸은 하루가 다르게 피곤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고 한 번이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는 그 사실이었다.


나는 결국

조용히 오토바이 옆에 서서 말했다.


“이제… 여기까지 해야겠다.”


“이번엔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일을 하자.”


배달을 그만둔 첫날,

방 안은 깊은 새벽처럼 고요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질문을 떠올렸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책상에 앉아

오랜만에 메모장을 펼쳤다.

• 월급이 꾸준히 나오는 일

• 위험이 적은 일

• 지금 몸 상태로도 할 수 있는 일

• 앞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일


그리고 마지막에 작은 글씨로 적었다.


“이번엔 무조건 안정과 꾸준함을 선택하자.”


그때 문득 형의 말이 떠올랐다.


“너한텐 이런 게 필요해.

불안정한 일 말고,

안정적이고 꾸준히 버틸 수 있는 일.”


그때는 못 알아들었다.

지금은 정확히 알겠다.


나는 바로 형에게 연락했다.


“형, 그 상수도 일… 나 해볼게.”

“그래. 니가 마음먹으면 잘 할 거다.”


그 한마디가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상수도 현장 땀, 진흙, 그리고 ‘정직한 돈’


그렇게 시작한 상수도 관리 일은

배달이나 캐디와는 완전히 달랐다.


배관을 점검하고,

누수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으로 출동하고,

때로는 진흙탕에 서서 삽질을 해야 했지만


적어도 이 일은

날씨나 우연에 흔들리지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월급이 ‘정해진 날짜’에 들어온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내 생활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빚을 갚을 때도,

통장 잔고가 비어도,

최소한 다음 달에 또 돈이 들어온다는 확신.


나는 그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꾸준히 버는 것.”

그게 결국 사람을 살린다는 걸.


급하게 버는 돈도, 큰 돈도

‘안정’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녀를 만났다


그 무렵,

지금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겉모습으로 보면

나는 그저 평범한 현장직 노동자였고,

화려한 시절은 모두 지나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요.

지금의 당신이면 충분해요.”


그 한마디가

내 지난 몇 년의 고통을 단숨에 녹여버렸다.


나는 그날 밤

혼자 조용히 다짐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응원은 제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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