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과 100일, 그리고 웅녀 프로젝트 — 24살

내가 원하는 내가 된다는 것

by 윤샹

웅녀 프로젝트. 일주일을 꼬박 고민하여 지은 이름은 고작 이거였다.

투박하지만 어떡해. 이게 내 진심인걸.


스크린샷 2025-12-17 10.08.25.png 24살에 어시스트카드 세계여행리포터에 도전하며 적은 PPT의 한 부분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학생이 되었으나 알바만 5개에 수업 듣기에 바빴던 24살의 나는 어느날 숨통이

콱 막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바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견고한 현실 속에서 꼭두각시처럼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날 내게 달린 모든 실을 끊어보기로 맘 먹었다. 힘없이 주저앉을 인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스스로 걸어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 내가 한 일은

세계지도를 펼치고 내가 아는 수많은 나라들에 점을 찍는 것이었다.

그러곤 그냥 육안으로 봐서 가장 짧아보이는 루트로 선을 그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것들을

보러 가겠다는 마음에 들떠 일단은 짧은 시간에 가보고 싶은 곳들을 다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예외없이 모든 걸 최저가로 계산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지만 그땐 알지 못해

무식해서 용감했다. 100일, 3개월의 예산으로 대략 500만원이 책정됐다.


그러곤 수중에 있는 400만원을 들고 출국을 결심했다. 될대로 되라지.


이즈음 한 동생이 내게 세계여행리포터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1등하면 300만원을 준다고. 내가 자유롭게 짠 여행 계획서를 보내고 여행 다니면서

회사 홍보만 해주면 된다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간절했다. 될리가 만무했지만 최대한의 간절함을 넣었다.


자기소개 ppt를 만드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진심을 적고 최대한 고민하는 것뿐이었다.

여행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정말 오래 고민해 적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고'

숨막히게 해야할 것이 많은 이곳에서 말고 정말 자유로운 상태로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생각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오고 싶다고. 그리하여 내 여행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웅녀 프로젝트


힘들어도 좋은니, 마늘과 쑥만 먹고도 간절히 버텨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모한 곰처럼, 나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땐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웅녀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그리하여 나의 투박하지만 간절한 '웅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0원 단위로 예산을 짜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살 것인지를 보여주는

피피티가 만들어졌다. 일주일을 꼬박 밤새워 만든 피피티를 제출하고 내 여행은 시작됐다.


첫 여행 계획


첫 번째 목적지는 중국. 지금은 내 제2의 고향이 된 이곳이 내 생의 첫 여행지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24살의 호기로운 배낭여행은

첫 해외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목적지가 중국이었던 이유는 소중한 인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한 수업에서 만난 한 언니. 그날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처량하게 느껴져 모든 수업을 자체 휴강하고

집에서 펑펑 울다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만을 남겨뒀던 날이었다. 마침 외부 특강이라

저녁에 시작되는 수업 덕분에 낮에는 서글픔을 모두 눈물과 함께 쏟아 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수업에 참가했다. 거기서 만난 한 중국인 언니. 그녀와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녀가 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었기에 우리의 인연은 금세 끝이 나야했지만,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라고 했던 언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남아 첫 여행의 목적지로 언니의 고국인

중국을 선택했다. '우리가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회의했던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그렇게 설렘과 함께 시작된 나의 여행기. 그 여행이 끝난지 딱 10년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나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 실에 묶인 꼭두각시 같았던 생활에서 의무를 끊어내고 나니

나는 내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여행이 나의 인생의 큰 전환기었음을 잊지 못한다.

사람은 늘 바뀌지만 그 순간의 깨달음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34살이 된 지금.


앞으로의 브런치 글에도 나의 이런 부유하는 생각들을 잡아두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