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방향이 되다
vpn이 없이는 카카오톡을 열 수도 없는 나라에서 내 메세지를 받아줬던 언니.
현재는 중국에서 살면서 vpn을 껐다 켰다 하며 살아가는 것에 너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중국에서 vpn없이 카톡을 켜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언니의 노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중국 내 내륙 지방에서 베이징까지 오는 것이 서울에서 상하이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조차 생각치 못한 24살의 나는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들떠
무작정 언니에게 만나자고 했더랬다.
여행을 가는데 언니가 보고 싶어서 첫 목적지를 중국 베이징으로 정했다고
거기서 다시 만나자고.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나의 어렸던 그리고 매우 짧았던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흔쾌히 승락을 했고 연차를 내고 비행기만 3시간을 타고
베이징까지 날아와주었다. 이것이 바로 대륙의 기세인가, 당시는 그렇게까지 알지 못했던 언니의 수고.
무튼 그렇게 언니를 만나기로 하고 언니가 잡아주겠다는 호텔에 묵기로 하며 첫 목적지를 중국 베이징으로
잡았다. 여행용 배낭도 아닌 그저 크기만한 배낭을 하나 아무거나 사서 짐을 욱여넣고, 작은 캐리어
하나와 함께 떠난 세계일주. 인생 첫 해외 여행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설레고 대부분은
긴장하여 뭔가 머리 속이 멍했다. 내가 정말 한국을 벗어나는 걸까.
그때 비행기에서 내 곁에 앉았던 사람은 독일인 어여쁜 친구였는데, 이름은 맨디라고 했다.
여행을 간다는 설렘 때문일까 그녀와 쉽게 친해진 나는 같이 사진도 찍고 한 시간 가량의
비행을 마친 뒤 공항에서도 서로 짐을 들어주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언니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움직이면서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지하철. 카드만 찍고 들어가면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컨베이어 벨트에 짐을 넣고
물은 따로 꺼내 확인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지하철 환경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뭔일이 있길래 이렇게까지 검사를 하는 거지.... 참 번거롭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마저도 새로워 설레었던 여행의 초입.
지하철을 타고 언니가 말한 목적지인 베이징역에 도착하니 말로만 듣던 '인산인해'다.
아 중국은 정말 크고 사람이 많구나. 그 풍경을 눈으로 보는데 그것마저 설레서 행복했다.
이게 바로 숨만 쉬어도 행복한 것이구나.
기분이 워낙 좋다보니 언니를 기다리면서 관찰하게된 중국인들이 다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혼자 셀카도 찍고 놀고 있는데 그런 나를 계속 신기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셔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바디랭귀지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여 함께 사진도 찍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 분은 지하철 입구에서 사는 노숙자 분
먹을 거라도 좀 사드리고 왔음 좋았을텐데 전혀 몰랐어서 언니와 떠날 때 마치 맨디와 이별하듯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만 하고 떠나버렸다. 그나저나 그 당시의 나는 참 웃기다....
언니 하나만을 믿고 넘어온 베이징. 하지만 언니도 베이징 사람이 아니라
베이징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서울 사람이 아니면 서울 여행을 시켜주기
어려운 것과 같은 것인데 왜 중국인이니 다 잘 알거라고 생각한걸까. 무지하기 그지 없었던
그때의 어린 내가 우습기 그지없지만 뭐 그때는 그랬다.
베이징의 베자도 모르는 중국인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은 베이징의 호텔에 잘 도착했고
둘이 밀린 수다를 떨곤 언니의 친구 한 명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중국에서 충격을 먹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지하철, 둘째는 식당이다.
한국에 마라탕이니 탕후루니 하는 것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2015년....
내가 중국에서 처음 먹은 음식은 마라샹궈였다.
지금은 사랑해 마지않는 음식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던 마라의 맛....
입이 얼얼해지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무더웠던 여름날 식당에 에어컨도 틀어져 있지 않고
얼음물도 한 잔 없으며, 음료수도 상온의 것이었던 것이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더위에 쩔어 마친 중국의 첫 끼.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보냈고 2박 3일의 시간이 흘러
몽골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언니와 함께 트랜스몽골리안 기차표를 사고 낯선 중국을 돌아다니며
심심하지만 함께라 행복했던 시간이 끝이 났다.
사회초년생이었던 그녀는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이 대접해야한다며 모든 식비와 호텔비, 교통비를
내주었는데 너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던 그 기억이 여태 남아있다. 어쩌면 잠시 만난 낯선 사람일 수도 있으나
이렇게 먼곳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는 낯설지 않은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일 수 있는 외국인.
그렇게 나에게 중국 사람에 대한 호감은 깊게 새겨졌다. 그 인연이 이어져 훗날 교환학생 룸메이트부터
현재의 남편까지 그리고 중국에의 정착으로 내려왔다. 어쩌면 이 때 처음 시작됐을지도 모르는 나의 중국과의 홍연. 100일 간의 첫 스타트를 끊어줬던 중국과 그곳에 사는 나의 소중한 사람.
여행이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연이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표정이 결정하는 무언가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며 시작하게 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