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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12. 2022

어느 날 허리디스크 환자가 되었다 #1

통증이 집어삼킨 평범한 일상

2020년 여름의 어느 날, 샤워하는데 허리를 숙이는 동작이 힘들게 느껴졌다. 3n년의 인생을 살며 허리 통증을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었건만 이 무언가가 기분 나쁘게 당기는 느낌은 뭐지? 싶었다. 곧 나아지겠지 하며 넘긴 통증은 서서히 심해졌지만 바보 같은 착각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게 된다. 생리주기마다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보고 산부인과 쪽 질환일 거라고 냅다 추측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통증 수준이라 산부인과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로 버틸 수 있었다.


겨울이 다 되어서야 점점 심해지는 나의 통증이 말로만 듣던 허리디스크 때문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때는 디스크가 탈출했을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큰 불행은 남의 이야기일 뿐 웬만해선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행복 회로를 돌리며 산다. 나 또한 중년 어르신들의 고질병으로 익숙한 그 병이 나에게 왔을 리 없다는 거만한 태도를 가졌던 것이겠지.

 

동네 정형외과에서는 엑스레이 상으로 디스크 소견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반드시 MRI를 찍어 이 의심을 확실하게 지워버리고 싶었다. 검색을 통해 해당 장비를 갖추고 있는 인근 척추 전문병원을 찾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피해야 할 곳을 먼저 가게 된 것이었다.


4-5번 디스크가 터져서 그런 거네요! 당장 시술받으셔야 합니다.
도수치료도 매일 받으셔야 하고요.


 왜인지 신나 보이는 의사의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원체 의심 많은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시술을 받으면 나아지냐는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자세한 내용은 우리 실장님과 얘기하라는 그의 표정은 의사로서의 직업적 소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순순히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을 따라가 건네받은 시술 안내문에는 700만원이라는 비급여 시술 가격과 안내사항이 쓰여 있었다. 매일 받아야 한다는 도수치료는 1시간에 무려 19만원이었다. 두려움과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그대로 시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섰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해 '오빠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라며 울었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은 과연 적응의 동물이다.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은 서서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동네 찐맛집을 찾고 싶을 땐 지역 맘카페를 가입하듯, 먼저 척추질환 환우카페에 가입을 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병을 알리고 지인 중에 환자가 있는지 묻고 다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직장이 의료 분야와 관련이 있는지라 이런저런 조언을 구할 수 있었고, 결론은 결국 하나였다. 아직 수술은 안된다는 것.


예약했던 시술을 취소하고 추천받은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님에게 먼저 가보기로 했다. MRI를 본 교수님은 4-5번과 5-6번(천추 1번) 디스크가 둘 다 탈출되고 퇴행된 상태이지만 나이가 젊으니 수술보다는 보존적 치료를 권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보존적 치료란 얼핏 보면 치료의 일환으로 느껴지지만 진통제 복용과 허리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통증이 가시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통증의 크기는 마냥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진통제 함량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이 시기의 통증 양상은 주로 자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오전 시간 내내 가장 심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지면에 발을 디디면 발끝까지 번개가 치고, 이후 두세 시간 이상 허리부터 종아리까지 전기가 오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특히 잠을 자는 시간에 비례하여 통증의 강도도 심해지고 지속시간도 길어졌다.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이 가장 낮은 누운 자세로 잠을 자는 시간만이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건만, 오래 잘 수록 다음 날의 고통이 보복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한 번 진통제를 복용하고 약효가 지속되는 약 4시간의 시간 동안만 예전의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서러웠다. 통증이 발생하기 전의 인생은 대체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지난 시간이 그리웠다. 이젠 회사와 집을 오가고 쉬는 것 외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도 다다음날이 되어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윽고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 주가, 한 달이 지나갔다. 하루에 두 번 반드시 챙겨먹던 진통제를 하루에 한 번, 가끔은 아예 안 먹고 버틸 수 있는 날도 생겼다. 두어 달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예전에 비해 통증 강도는 약간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증상이 악화되는 쪽이 아니라면 0.1퍼센트의 호전도 분명 발전이었다. 그렇게 약 반년의 밀도 낮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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