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한국

영원히 버틸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은 없다.

by 리리

검은 후드티를 쓰고, 아무도 없는 마트 쪽으로 걸어가서 운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때 진짜 깜깜했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여기가 마트인지, 아직 우리 집인지 인식할 겨를도 없이 그냥 땅을 치면서 운 기억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난 이곳에 왔는지, 왜 내가 저 사람들이랑 같이 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것들 때문에 힘들었고, 인생이 망가졌다.


근데, 내 인생은 진짜로 망가진 걸까. 어쩌면 내 인생은 원래 꼬인 채로 태어났고 그래서 그렇게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잘 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원래 그런 인생이어서. 그래. 나란 놈이 원래 그렇지. 반짝이는 네온샤인이 여기까지 비치는 것 같았다. 저기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럴수록 난 너무 비참해졌다.


별 볼일 없는 삶, 그게 내 삶이라고 생각한 시간이 없었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그때가 나에게는 중3이었고, 부모님의 케어도, 공부실력도, 운동도, 친구관계도, 무엇 하나 모난 것 없이 살고 있었다. 늘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가 좋아하는 농구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늘 힘들고 지친다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내 인생은 너무나도 순탄했다.


근데 그게 내 힘으로 이룬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날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일주일 전이었다. 일주일 전, 부모님은 싸우시는 일이 잦아졌고,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잘하던 공부도, 농구도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다. 친구들은 갑자기 나를 떠났고, 부모님은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오히려 싸움에 날 끼어들게 하시기도 했다.


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의지했던 것이 다 환상에 불과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의지할 수 있는 건 없고, 내가 인생을 지날 동안 내가 의지할 것을 계속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기만 했다. 이제 이 경우로 찾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언제든, 운으로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눈물이 조금 그쳤을 때 옆에 있는 캔을 집어서 한 번에 비울 작정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목구멍에 퍼졌고, 덕분에 몸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그때 갑자기 어떤 고물 차가 도로를 천천히 달렸고, 곧 멈춰버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도로를 가로질러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놀라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던 그때 잔디를 밟고 지나간 바퀴가 멈췄고, 운전석 창문이 정확히 내 쪽으로 향해 있었다. 곧이어 창문이 내려갔다.


"누구세요?"


"너 어디 갈 곳 없지?"


"네?"


"너 돌아갈 집 있어?"


"...."


"돌아갈 집 있냐니까?"


"네. 있어요."


"그래? 거기는 좋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게 해 달라는 가능성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채 정말로 내 집에서 행복한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분명 시끄러운 소음과, 고함이 들리겠지. 나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저 내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겠지.


"아뇨."


"타. 뒷좌석에 사람 한 명이랑 케리어가 있는데 타는데 문제는 없을 거야."


"네?"


"말귀를 못 알아듣네. 타라니까?"


"..."


"설마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어색해서 그러는 거라면 애들 다 자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아침 되면 다 소개해 줄게."


순간 뭐에 홀린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조수석 문을 열어서 차에 탔다. 차는 내가 조수석 문을 닫자마자 바로 출발했고, 난 둘러보면서 차를 구경했다. 정말로 뒷좌석에는 자고 있는 사람 한 명이 있었고, 누구의 케리어를 다 몰아넣은 건지 케리어가 가득했다. 조수석에도 사람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근데, 이렇게 빠르게 달리고 있으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자유가 된 기분이었다.



사진출처: lifestyle travel photo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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