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것도 여행의 일종이에요?
"야."
누군가가 날 깨우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눈을 떠 보니 해가 이미 떠 있었고 곁에 있던 사람들도 깨어 있었다. 어두웠을 땐 볼 수 없었던 얼굴들이 햇살 덕분인지 잘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날 깨운 사람을 확인했다. 어제 운전석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잘 일어나네?"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아니 너무 잘 자길래, 안 일어날 줄 알았지."
"난 박준혁이고, 운전석은 김민찬, 오른쪽에 쟤는 강미나고, 옆에 조수석은 김지훈이야."
"내 말 무시하냐?"
"아 됐어. 꼬우면 잘 일어나던가. 아무튼, 너 이름은 뭔데."
"송지훈이요.."
"송지훈? 부를 때 불편하겠네. 지훈 1, 지훈 2로 불러야 하나."
갑자기 섞이는 말소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왜 여기와 있었지? 내가 왜 여기 있지. 분명 난 마트 앞에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서, 뭘 하고 있었지? 내가 애초에 마트에 왜 갔었더라? 뭔가 이유가 있었는데.
"우리 어디 가는지는 김지훈이 다 설명해 줬을 거고."
"어디 가는데요?"
"엥? 김지훈이 안 말했어? 야 김지훈."
김지훈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조수석에서 눈을 떴고 박준혁이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몇 마디를 하는 가운데 내가 드디어 여기 왜 와 있었는지 생각해 냈다. 그래. 난 마트에서 이 사람들 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어. 근데, 어딘지 저 사람들이 설명을 해 줬나?
"넌 어디서 왔어?"
오른쪽에 있는 여자아이가 나한테 질문을 했다. 간단히 어제 마트 이름과 지역 이름까지 설명한 뒤에 소녀는 한참을 생각했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넌 왜 여기 탄 거야?"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속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내려앉았고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내 대답을 기다리던 여자아이 대신 다른 운전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넌 여기 왜 탄 건지부터 들어보자. 원래 여기 타면 다 듣거든."
운전석이 근처 휴게소에 차를 대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이 없는 나한테 여자아이가 대답을 재촉했지만 난 고개를 숙인 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이었다.
다 알고 있다시피 내가 여기 탄 이유는 전부 우연이었다. 갑자기 가족의 사이가 나빠졌고, 친구들과는 멀어졌고, 공부도 못했고, 농구도 못했다. 그건 내가 무슨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운이었다. 내 인생에 운이 다 떨어져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막상 말하려고 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
"굳이 지금 말하지는 않아도 돼."
다른 운전석이 내가 대답이 없으니 머쓱해졌는지 슬쩍 넘기고는 차에서 내려 핫도그를 사 먹으러 갔다. 차에 남은 사람은 여자아이, 그리고 김지훈. 여전히 고개를 숙인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있잖아. 넌 어디서 죽고 싶어?"
물은 사람은 박준혁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입은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국."
"영국? 그렇게까지 먼 곳에서? 이유가 있어?"
이유. 있었다. 분명하게 내가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분명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근데 그게 뭐였을까. 내가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는데, 너무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이유가 있었다. 눈앞에 누군가가 아른거렸다. 나에게 귓속말로 작게 속삭이는 누군가가 있었다.
"사랑해."
"근데, 이것도 여행의 일종이에요?"
아무나 들으라고 말한 내 말은 공중에서 흩어졌고, 기적처럼 누군가에게 전달될 것만 같았다. 나에게 질문을 한 박준혁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결국 우린 죽으러 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