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심했고 걱정도 심해서, 마주하지 못했다.
그들과 처음 만난 후 며칠이 지났다.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난 그들과 그들의 목표에 대해서 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처럼 힘든 사람들이었고 죽기 전에 여행이라도 가며 행복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을, 일주일 동안 알게 되었다.
솔직히, 당황스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내가 힘든 상황이었어도 자살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단 말이다.
"지금 후회해 봤자 소용없어. 이미 넌 우리 일원이야."
준혁이가 마치 당연한 말이라는 듯이 음료수를 마시며 내뱉었다.
"좀 미리 말해주면 안 돼?"
"나도 지훈 1이 말했을 줄 알았지. 지훈 2야."
"지훈 2라고 부르지 마."
그렇지만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초록색 고물차도 이제 슬슬 정이 들어가고 있고, 애들도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 잘 맞았다. 첫 번째 목적지가 미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머리가 좀 띵하긴 했지만.
"왜? 미국이 어때서?"
"솔직히 얘기할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이 고물차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의 조그마한 돈으로, 어떻게 미국까지 가서 자살할 건데? 심지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행까지 즐겨가면서?"
서울에도 비행기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박준혁은 굳이 김해국제공항으로 가야 한다면서 생떼를 부렸다고 한다. 거기 자신의 친부모님이 있다고, 거기로 꼭 갈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그것 때문은 또 아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여행은 즐겨야 한다는 김지훈의 명령 부탁에 따라 그들은 가는 길에 편의점도 들르고, 카페도 가고, 바다도 가고, 백화점도 가고, 하여튼 한국에 있는 모든 명소를 관람할 예정인 것 같았다.
"우리가 그 정도 돈도 없어 보여?"
"당연하지."
"야. 우리에게는 강미나가 있어. 걔 돈이 얼만데. 걔도 돈은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했어."
강미나,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에 차에서 얘기한 걸 제외하고는 한 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확실히 말수가 없는 편이고 조용해서 별 얘기를 안 하는 친구였다. 그런 점에서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으나.
"설마 금수저라고 내가 예상을 했겠어? 상상이 안 되잖아."
"금수저 아니야."
"엥 그럼 뭐야."
"도둑놈."
"걔가 다 얘기한 거야?"
내 말을 들은 강미나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다 말한 건 아니고, 그냥 그 정도까지만."
마치 변명하듯 말했고 몇 초의 정적이 흐르다가 강미나가 딱 잘라서 말했다.
"다 얘기한 게 아니면 됐어. 굳이 알 필요 없어."
"뭘 훔친 거야?"
"...."
"훔친 게 아니야?"
".. 아무 일도 없었어."
"나한테 말해봐."
집요하게 얘기하는 날 보고 강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할 용기가 도저히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불쌍했다.
"괜찮아. 말해도 돼."
"...."
"난 뭐든 상관하지 않을게."
"정말이야?"
"그래. 뭐, 여기서 안 특이한 사람이 있겠어?"
강미나가 흔들리고 있는 틈을 타 한마디를 더 하고 입을 다물었다. 강미나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쩌면, 그때 계속 기다렸으면 걔가 분명히 '그래. 알았어'라는 말을 던지고 말을 해줬을 텐데. 그다음 한마디가 성공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그리고, 애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게 말이 되냐?"
"뭐?"
"애들 다 너 하면 그 얘기밖에 안 하는데, 나만 모르면 좀 그렇잖아."
성공에 가까워지니까 마음이 편해졌나 보다. 그만 내 속마음을 얘기해 버렸고, 강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멍청한 나는 불로 집을 태운 줄도 모르고 기름을 부어버렸다.
"애들이 너보고 도둑놈이란다. 그게 뭔지 궁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미나야. 잠시만 내가 잘못했어. 진정해 봐."
내가 애원하듯 그녀를 차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지만 이미 늦은 때였다. 차 문을 열고 자고 있는 애들에게 편의점에서 사 온 냉수를 얼굴에 뿌려버리고는 병을 김민찬한테 던져 버렸다.
"야 이 씨발새끼들아! 일어나!"
차가운 냉장고에서 방금 사 온 냉수를 맞은 애들은 어안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나보고 도둑놈이라고 했냐? 아님 다 그런 거야?"
강미나의 차가운 표정에 분위기는 싸해졌고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문제를 제공한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강미나는 아까 김민찬 쪽으로 던졌던 물병을 집어 발로 밟았다.
"저런 씨발새끼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너네는 그냥 흘려듣는 거지? 그렇지? 난 너네한테 진심으로 말을 한 거야. 너네는 알지도 못하면서 도둑놈이라고 왜 말하는데!"
강미나는 애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씩씩대면서 차를 나갔다. 차에는 정적이 흘렀다.
아무리 봐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강미나를 쫓아가 보았다. 아까 갔던 길로 가니 강미나가 보였고 걔는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강미나는 울음을 그쳤다.
"야. 그렇게 먼저 가 버리면 어떡해."
"좀 꺼질래?"
"아까는 미안해."
"...."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고 생각해."
"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뭐가 달라져? 난 걔네한테 털어놨는데, 걔네는.."
"걔네가 진심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지만, 일단 어떻게든 위로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었다. 위로는 되지 못한 것 같지만.
"괜찮아. 너무 속상해하지 마."
"...."
"난 그냥 여기 있을 테니까, 말하고 싶을 때 불러."
그러고는 정말 아무 말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있었다. 몇 분, 아니면 몇십 분의 정적이 흘렀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고 그 바람을 타고 버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어디선가 빗소리는 들려오는데 이상하게 여기만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고 마침내 걔가 입을 열었다.
"난 공상여인이야."
"응?"
"우리 엄마가 그랬어. 어릴 때부터 공상을 잘했거든."
"아.."
"근데 그때부터 난 그 뛰어난 상상력으로 걱정을 했어. 수백 수천 가지의 길을 생각하면서 내가 위험하거나 불행한 길로 가면 어쩌나 한참을 생각했지. 하지만 그 걱정 때문에 지금 이 모양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한참 얘기하다가 멈추고는 한 번 더 숨을 쉬었다. 한숨일까. 그냥 숨을 쉬는 걸까.
"난 그때가 정확히 생각나, 사람들의 말소리. 공기, 냄새, 왠지 모르겠는데 전부 생각나. 근데 그게 내 상상력으로 만든 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걸 쳐다보기가 싫어졌어. 이젠 말하지도 못하겠네. 쟤네가.. 저 모양이니. 너도 똑같을지 어떻게 알아. 그래서, 내 과거는 집요하게 물어봐도 소용없어."
"너무 자책하지 마."
"뭐?"
"네 과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책할 정도는 아닌데?"
"거짓말 치지 마."
"예전에는 이렇게 여행 다녀본 적 있어?"
"... 아니."
"예전에는 친구 있었어?"
"없었던 건 아닌데.."
"예전에는 얘기 들어주는 사람 있었어?"
"...."
무슨 뜻인지 추측하려는 듯 강미나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도 똑바로 쳐다보면서 강미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본 강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더 좋아진 거지."
"그게 뭐가 좋은데. 어차피 쟤네도 나한테 상처밖에 안 주고.."
"내가 있잖아."
그 말을 하는 순간 약간의 정적이 또다시 이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가 난 또다시 당황했다. 설마, 그 말이 상처 주는 말이었나? 하지만 한참을 고민해도 딱히 상처 주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정말이었는지 조금 뒤에 걔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 도둑놈으로 생각하는 거지?"
"과거를 모르는데 어떻게 도둑놈이라고 생각해. 뭐 알아야 그렇게 생각하든지 하지."
"쟤네가 도둑놈이라고 하잖아."
"내가 쟤네 말만 들을 것 같아? 너 좋은 사람 같아 보이는데. 굳이 도둑놈이라는 쟤네 말을 듣겠어?"
또다시 정적. 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았다.
"그래."
조금 뒤에 강미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걱정이 심했네."
나도 걔를 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강미나가 미소 짓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뭔가 신기했다. 별 말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저렇게 될 수 있나? 속으로 생각한 뒤 말했다.
"이제 다시 가자. 애들이랑 얘기는 해야지."
"그래."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강미나가 말했다. 갑자기 저렇게까지 기분이 좋아진 이유를 난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당연한 걸 말해줬을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걔한테 걱정이 되는 일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걔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는데. 그래서 사실을 알려줬을 뿐인데 그게 위로가 되었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걔는 걱정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왜곡되는 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더 확실하게 증명받기 위해.
애들은 강미나한테 다 미안하다고 말해주었고, 걔도 이전과는 다르게 쿨하게 용서해 주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전보다 나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온 후 걔가 내 옆으로 와서 물었다.
"근데, 넌 여기 오기 전에 뭘 했어?"
"....?"
"뭐 하고 살았냐는 뜻이야."
"...."
한참 동안 없는 대답에 강미나가 섣불리 질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걔가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짐작 가능한 답변을 하려다가 내가 한 말에 막혀 버렸다.
"그냥, 잘 모르겠어. 다 잊어버렸어."
걔 앞에서 전부 다 우연이라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갑자기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지고 친구들의 사이도 안 좋아졌다. 그냥, 그런 게 모두 우연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밖에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강미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잘 자. 내일은 애들이 바다를 갈 거레."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강미나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풀밭에 누웠다. 아까와 똑같은 버스 소리에 바람이 들려왔다. 눈꺼풀이 감겼다. 완전히 감기기 전에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곧 금방 잊어버렸다.
'나도 공상여인이지. 상상도 잘하고.. 걱정도 많았고.. 과거는 솔직하지 못하고.. 마주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내가 싫지 않다는데 웬만하면 좀 믿어 주세요. 우리 믿음을 좀 키워봅시다.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