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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Sep 04. 2024

14. ’보이지 않는 것‘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기도, 빛나게 만들기도

때로는 서로 뜯어먹기 바쁘게 만들기도, 못나게 만들기도 한다는 그 사실이 참 모순적이다.


신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하나가 되려 하는 것일까


그냥 있다고 믿는 편이

보이지 않는 것과 관련된 경험으로 상처를 받은 나 자신을 너무 혐오스럽게 바라보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게 가능할까?


사랑, 신뢰, 긍정..

내가 믿고 나아가는, 나의 빛이 되어주는 저 가치들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없을 지도.


난 나를 믿는다.

나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허영으로 가득 찬 겉껍데기일 뿐이니.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실된 나로 하여금

나는 날 믿는다.


이에 보이지 않는 것이 껍데기뿐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아주 조금은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도.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내가 믿는 보이지 않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입시키지만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은 빛처럼 오묘하고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울지도?




보이지 않는 것은 참 어렵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참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삶의 이유가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이나 명예, 행복 등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의 의미와 목표로 자리 잡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함께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서 같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은 바로 ‘대화‘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린 서로를 모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만 그 대화가 상대방의 가치관을 강제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면 대화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 같다.)


두서없이 적은 오늘의 글은 내게 상처 입힌 사람들을 이해해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해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을 모든 사람들로 일반화시키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더 나아가 우린 너무나도 나약한 ‘사람’이다 보니 실수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는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좀 더 넓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겸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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