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지 열아홉 해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부업을 시작했다. 빌라 B01호, 우리 집의 현관문은 늘 열려 있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문을 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를 필요도 없었다. 동네 아이들, 요구르트 아주머니, 장사꾼, 육아에 지친 엄마들까지. 소란스러웠지만 따뜻했고, 그만큼 마음도 열려 있던 시절이었다.
그 문을 가장 자주 밀고 들어오던 아이가 있었다. 여섯 살 여자아이. 또래 아이들이 유치원으로 향할 시간, 그 아이는 늘 우리 집으로 왔다. 헐렁한 바지, 늘어지고 낡은 티셔츠, 손에 꼭 쥔 천 원짜리 몇 장. 아빠가 바빠 귀찮을 때마다 쥐여준 돈이었다. 엄마는 집을 떠나 있었고, 아이는 아직 세상을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작은 어깨로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아이는 해맑았다. “이모!” 하며 뛰어와 우리 집 소파에 털썩 앉고, 딸아이의 작은 옷을 입어보며 수줍게 웃었다. 계란후라이를 얹고 참기름과 간장을 넣어 비빈 밥을 복스럽게 먹는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때 우리 집도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이는 늘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밥맛 덕분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 아이를 든든하게 했을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이사 갈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 얼굴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이모, 나도 따라갈래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말 속에는 버려질까 두려워 떨고 있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그저 시간만이 모든 걸 달래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아침, 아이가 너무 일찍 오면 아들의 잠을 깰때가 많기 때문에 처음으로 현관문을 잠갔다.
문을 흔들고, 발로 차고, “왜 안 열리지” 하며 투덜대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집 안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낯설 만큼.
다음 날, 급히 찾아온 이웃이 말했다.
“그 아이… 죽었대요.”
뺑소니였다. 아빠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길을 건너 과자를 사러 가다 그만 사고를 당했다 했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병원을 찾아 뛰었지만, 너무 늦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아빠… 배가 많이 아파…”
그 작은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장례식장에서 본 영정사진은 돌사진 한 장뿐이었다. 그 뒤로는 사진이 없었다 했다. 아이의 시간이 돌잔치에서 멈춰버린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없이 울었다. 아이가 우리 집에서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마저 기억해준 사람이 나뿐일까 두려워서.
엄마는 내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딸을… 아세요?”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저는 같이한 시간이 없어서… 울 수가 없어요.”
나는 그 아이가 우리 집에서 웃고 놀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여러 번 말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딸을 기억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아이 이야기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마음에 깊이 묻어두었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다 자라 청년이 되고,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엄마, 그런 친구가 있었지.”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추억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누군가 마음의 문을 열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이제 생각한다.
그 아이는 아주 잠깐 스쳐간 인연이 아니었다.
우리 집의 문이 항상 열려 있던 시절,
따뜻한 식탁과 웃음이 있던 시간 속에
반짝이며 지나간 소중한 존재였다고.
그리고 믿는다.
그 아이는 그때, 우리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를 한 번은 만났을 거라고.
문이 열려 있던 시간,
그 문턱을 넘던 작은 발자국과 맑은 목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조용히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