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몰입을 방해한 미운 선생님
몰입은 스스로 지켜나가는 거야!
방문수업은 수업을 받는 아이의 집으로 가서 수업을 한다.
큰 아파트 단지를 끼고 회원을 늘리면 회원끼리 아는 경우가 많아 모둠수업으로 이어 지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맞춰 벨을 눌릴 때 어김없이 문이 열릴 것을 기대한다. 철석같이 계약서에 약속한 대로 쌍방 간에 수업의지가 있는 거니까.
그날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형제가 수업을 했는데, 형은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은 1학년이었다.
부모님은 안 계실 때가 많고,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 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수업을 마치면 바로 다른 아파트로 이동해 시간표대로 다른 수업을 해야 하므로 시간은 그야말로 금이었다. 즉각 직장에서 일을 하시는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선생님, 제가 연락해 볼게요. 잠시만요"
집에는 텔레비전소리가 나오고 있었고 어머니가 아이에게 핸드폰을 하는지 계속 벨소리가 울렸다.
날은 덥고 아파트복도등은 자꾸 꺼지고 내 마음도 덩달아 깜깜해져 갔다.
몇 번을 해도 안되니 아이의 어머니는 내 카톡에 잠시 비번을 띄워 주셨다.
남의 집에 비번으로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곧장 텔레비전소리가 나오는 방문으로 가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나는 아이가 자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이는 웃으며 인사를 하는 거 아닌가?
'안녕하세요?'아이가 연방 싱글거리며 웃는다.
장난인가?
미안함인가?
뭐지?
나는 웃지 않았다.
텔레비전 본다고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그 말도 믿지 않았다.
평소 수업만 하면 너무 재밌다고 난리를 치는 아이였는데ᆢ
오늘은 텔레비전에 영혼까지 홀릭한 것일까?
모르겠다.
정색하며 물어봐도 못 들었다고 하니 더 이상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어린아이는 뭔가에 집중하면 주위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아니면 벨소리나 초인종 소리를 듣고도 텔레비전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일어서지를 못한 걸까?
정말 궁금하다.
텔레비전에서는 그 녀석이 오매불망 사랑하는 '신비아파트'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겠다
그 아이는 신비아파트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줄줄 꿰고 있으며 남에게도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댈 정도로 신비아파트 팬이다
그러니 독서수업 시간은 다가오고 문밖에 초인종이 울려 대고, 엄마번호로 핸드폰이 울려도 '일 초만 더, 일 분만 더, '
하고 시간을 벌이며 꿀 같은 몇 분을 더 맛봤을 터이다.
세상 모든 천재들은 <몰입>의 경지에 들어가 본 사람들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처럼 이 세상에는 오직 나와 몰입의 대상만 존재하는 것처럼 몰입에서 황홀경을 맛본다.
몰입은 게임이나 TV, 영화 같은 매체에도 해당된다.
몰입은 뭔가를 끝까지 집중해서 해내는 것이다.
에디슨 같은 과학자는 전구 필라멘트 하나를 발견하는데 2,000번의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럼 이때의 몰입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재밌는 게임에 빠지면 하루를 꼬박 넘기기도 한다. 이때의 몰입은 24시간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신비아파트를 보는 1시간도 채 안 되는 몰입을 수업시간으로 방해받은 것이다.
아이의 몰입을 지켜줄 방법은 없을까?
아이는 자신의 하루동안 독서수업이 몇 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신비아파트가 끝나는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인생의 시간표가 있다는 것과 그것은 쌍방 간의 약속이므로 먼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표 중에 신비아파트를 끝까지 보지 못할 것 같으면 욕구지연을 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소중한 몰입은 지켜지는 거니까.
독서는 왜 하고, 논술은 왜 하는가?
크게 보자면 자신의 인생을 해석하고 지켜 가기 위함이다.
문해력이란 책의 글귀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능력이기도 하니까.
처음에는 아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섭섭하기만 했는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신비아파트를 들으니 아이가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된 것은 된 것이고, 옳지 못한 행동은 고쳐야 하기에 따끔하게 얘기를 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자신의 재미를 위한 몰입시간도 스스로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의 성숙한 시간조절능력과 더불어 아이의 몰입환경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