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세상을 향해

현대자동차(1993)

by 소채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4학년 2학기, 학과 사무실에서 받은 대기업 인턴 지원서를 쓰고 어럽지 않게 학교 인턴과정에 합격했다. 수업을 대신해서 현대자동차 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제조 와 판매를 하고 현대자동차 서비스는 정비와 부품을 판매하는 분리된 법인이었다. 현대자동차를 지원한 동기들은 주로 울산공장이나 마북리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현대자동차 서비스를 지원한 나는 다행히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두 회사가 하나의 회사로 합병된 상태이다.


나는 정비 현장인 대방동 남부사업소로 배치를 받게 되었다. 아마도 3명 중에 내가 근무 성적이 제일 좋았던지 아니면 제일 나빴던지, 둘 중에 하나였던 거 같다.입사할 때 같이 들어온 동기 30여 명은 각 부서로 배치되고 정비 관련 부서에 배치된 3명의 동기 중에 2명은 원효로 본사에서 정비 관리부, 판촉 정비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첫 신입사원 배치는 앞으로 내 직장 생활 30년의 첫걸음이자 마직막까지 같이한 운명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여러 회사를 이직하면서 본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고객과의 접점인 정비 현장에서 청춘을 보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독일 트럭회사의 정비 사업소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첫 번째 보직은 자동차 정비공장의 '정비 행정'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 정비사들이 고객의 차량을 효율적으로 정비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업무였다. 199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정비 공장이라고 불렸던 그곳은 정비사만 300명이었고 하루 500대 정도의 차량을 정비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풋풋한 신입사원은 300명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고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많은 동료들을 만나고, 특히 첫 번째 만난 상사로부터 받은 경험과 지식들은 약 3년 동안 체화되어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 결혼도 하게 되고 야간대학원에서 석사학위도 취득하게 되었다.


정비 공장의 3층 옥상에서 어느 점심시간을 마치고 여의도 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순간에 들었던 생각은 아니었고 학창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어설픈 희망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동차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에 그 당시 자동차 산업의 본 고장인 미국의 시장을 보고 싶다는 당돌하고도 무모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앞길이 창창한 대졸 공채 사원인데, 아들내미도 이제 100일 밖에 안된 갓 신혼살림이었는데, 모아둔 넉넉한 자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직 하고 싶다는 나의 이기심 덕분에 3년 만에 사표를 내고 퇴직금 받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친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