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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숙 Jun 06. 2024

할머니의 자리란

푸근함의 지혜

 

한달에 한번 만나는 모임에서의 일이었다.

손주 돌보느라 석 달째 참석 못하는 한 친구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 봉양과 자식 사이에 회생 양 이라는 전제하에 여태까지 힘들게 살았으니 더 이상 자식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억울하다는 지론이 대세였다.

그러니 절대로 손주는 돌봐주지 말아야된다 는 친구, 경제적으로 도움을 못 주니 아이라도 봐줘야 된다는 친구, 며느리 재능이 아까워 같은 여자 입장 에서 손자 손녀 예쁘게 봐준다는 착한 친구, 딸네 집으로 출근하면서 보수를 받고 살림을 도와준다는 친구, 손자 돌봐주는 것이 확실한 노후대책인 것 같다는 재미있는 친구, 한 친구는 손녀가 너무 예뻐 며느리가 오지 말라고 할까 오히려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날 우리 할머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시면서 나와 동생들을 돌봐주셨을까 생각해봤다.


몸이 허약한 엄마를 대신해 우리 형제들을 키워주신 할머니!

다섯 살도 안 된 나에게 화투 를 가르치며 데리고 놀기도 하시고 매운 김치는 입으로 빨아서 내 밥숟갈에 놔주고 단단한 음식이나 질긴 고기는 꼭꼭 씹어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할머니 입 안에 있는 사탕이나 껌조차도 모두 내 차지였다,

머리숱이 많았던 내 머리는 이모나 언니보다도 할머니가 땋아준 양 갈래 머리가 저녁때 까지 가지런했었다, 모기 물린데는 할머니 침이 약이었고 배가 아프면 문질러주는 손이 약손이셨다, 개구리를 삶아서 보약이라며 싫다는 내 입에 넣어주기도 하시고 추운 겨울 내신발 은 부엌 부뚜막에 올려놨다간 꺼내주셨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좋아하는 함흥냉면, 가자미식혜, 맑은장국, 같은 음식도 어느새

할머니의 식성 그대로다.


 더듬거리며 읽을 줄은 알아도 쓰지는 못하시는 할머니의 편지를 대신 쓸 때가 있었는데 글씨 잘 쓴다고 이웃들에게 자랑하셨다. 멀리 강원도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요즘은 희숙이가 아침 잠 깨우는데도 한 시간씩 걸리고 반찬 투정이 심해서 할머니가 힘들다고 쓰라는 바람에 받아쓰던 내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며 진땀 흘리면서 반성하게끔 하기도 하셨다.

냉정하면서 이성적으로 교육 시키는 엄마보다 오랜 세월 살아오시면서 얻으신 지혜로움으로 아무 때고 달려오는 손녀를 두 팔 벌려서 쓸어안아 주시던 그 푸근했던 가슴!

그나마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어릴 적 느꼈던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길을 가다가도 할머니 손잡고 웃으며 재잘거리는 아이를 보면 한 번 더 되돌아본다.

좋아하셨던 음식을 만나도, 흥얼거리시던 교회 찬송가 소리가 들려도 어느새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찡해온다.     

 이 모든 기억이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그 옛날 할머니의 자리에 서 있다.

각자 집 집마다 물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와 관계가 얽히기도 하겠지만, 꼭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된다는 원칙 이전에 부모 입장이나 자식 된 도리를 따지기보다는 능력이 허락하는 쪽이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상투적인것 같아도 이 세상만사가 역지사지[易地思之]. 그 지혜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겠는가.    

 

인생 황혼 길에 서있는 나 역시 예전에 할머니처럼 손주들 에게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랑을 베풀어 먼 훗날 이 할머니를 생각하며 행복한 웃음을 웃게끔 하려고 노력중이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와 빛바랜 앨범을 꺼내 할머니 사진을 들여다보며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해본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를 내가 똑 닮아가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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