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희숙 May 23. 2024

놀이터에서 만난 어떤 미래

죽음을 바라보며 (웰다잉)

   요즈음 거실에서 어린이놀이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엔 햇볕이나 바람만 들락거리는 듯 조용했던 놀이터에 코로나19 바람에

학교랑 학원에 못 가는 예닐곱 살 된듯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책가방까지 메고 나와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나도 시간만 나면 내다보다가 어느새 놀이터로 발길을 향한다.     

   옆집 젊은 엄마도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동생까지 업고 끌려 나왔다며 기초학습이 걱정이라고 했다. 아이가 입학식을 손꼽아 기다리느라 잘 때도 책가방을 머리맡에 놓고서야 잠이 든단다.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를 보고 책가방에 뭐가 들었냐고 물었더니 자신만만하게 열어 보이며 자기 이름 쓴 공책과 깎은 연필이 가지런히 들어있는 필통까지 열어 보이며 밝게 웃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으스러지게 꼭 안아주니 숨 막힌다며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나간다. 동화책 선물 손가락 걸고 약속했더니 손바닥을 대면서 복사도 해야 된단다.     

  한 뼘도 안 되는 운동화 신고 와서 내 가슴에 벅찬 기쁨을 안겨주었던 손주는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가있다. 아이들과 어울려 웃고 있는데 저쪽 그늘 밑 벤치에서 나보다 연배가 위인 듯한 노인의 초점 잃은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손주 손녀 모두 커서 아이들 구경 힘드시죠?”하면서 옆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도 안 하셨길래  마침 손가방에 있던 비상용 마스크를 드렸더니 사양하신다.”마스크는 어르신 본인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쓰셔야 되요, 설명하면서 귀에 걸어드렸다. 아이들과 나를 번갈아보시더니 “코로나에 걸리면 나라에서 장례는 치러주겠지.”하며 중얼거리신다.     

언젠가 본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들어가던 늙은 여인이  “아~ 이젠 죽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하며 내뱉던 독백이 생각나서 소름이 끼쳤다. 싫다는 노인을 모시고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설렁탕 두 그릇 하고 소주 한 병 시키고 마주 앉았다. 마주하고 보니 반듯한 인상에 창백한 안색이 옛날 매일 아픈 모습만 보여준 창백했던 엄마의 모습과 비슷해서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자녀가 없는 줄 알았더니  금쪽  같은 따님이  둘이나 있으시단다.

예쁘고 야무졌던 첫째 딸은 남편 사업자금 빌려 간 후 소식 끊어진 지 3년이 넘었고 언니한테만 돈 빌려줬다고 트집 잡던 둘째 딸은 그 후에 언니하고 잘살아보라며 발길을 끊었단다. 부모의 교육이 잘못된 것 인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것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효도에 관한 이야기도, 불효에 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는 걸 보니 세월 탓만 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어느새 소주 두병을 비웠는데 정신은 더 맑아지는 듯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상처를 만들고 또 치유하면서 치유 잘된 상처는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나이든 노년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젊은 날의 상처는 몸이든 마음이든 어쩌면 세월이라는 약이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식에게서 받은 상처는 죽음 밖에는 다른 치료제가 없다 생각하시니 말이다. 이 또한 지나` 리라, 하면서 웃어넘길 수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보며 웃었는데 죽음을 생각하는 윗 연배의 그분을 만나서 사연을 듣다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내 나름 웰다잉을 염두에 두고, 당하는인생 마감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 중인데 말이다. 그분의 동호수를 조심스럽게 물어 수첩에 적으면서 내일 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분의 따님들이 하는 일이 잘 풀려서 하루빨리 연락이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어느 구름 뒤에 비가 숨었을까, 그것 또한 우리 인생사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